依依東望<의의동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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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29면

漢字, 세상을 말하다

위(魏)나라 사마의(司馬懿)가 이끄는 대군이 촉성(蜀城)에 밀려든다. 제갈량(諸葛亮)은 성루에서 홀로 금(琴)을 탄다. 사마의는 곧 빈 성임을 간파했으면서도 의외로 퇴각한다. 순간 카메라는 사마귀를 클로즈업한다. 중국 드라마 ‘호소용음(虎嘯龍吟)’의 삼국지 공성계(空城計) 대목이다. 드라마는 와룡(臥龍·누운 용) 제갈량과 총호(冢虎·무덤처럼 엎드려 때를 기다리는 호랑이) 사마의의 대결을 그렸다.

 공성계의 사마귀는 사마의의 메타포다. 감독은 등 뒤의 참새가 노려보는 것도 모르고 매미를 잡으려는 사마귀를 일컫는 ‘당랑포선황작재후(螳螂捕蟬黃雀在後)’를 그렸다고 말했다. 새를 잡으면 쏜 활을 치운다는 ‘조진궁장(鳥盡弓藏)’을 노린 참새는 황제 조예(曹睿)다. 제갈량과 사마의는 적이면서도 공생 관계였다는 의미다.

 감독은 사마의 평생을 ‘한들거리며 동쪽을 보다’는 ‘의의동망(依依東望)’ 네 글자로 요약했다. 제갈량이 맹달(孟達)에게 쓴 편지 구절을 재해석했다. 맹달은 촉의 장수였으나 위에 투항한 뒤 다시 제갈량의 북벌을 도우려다 사마의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장수다.

 극 중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수차례 ‘의의동망’의 속내를 묻는다. 동쪽에서 어떤 영광, 어떤 성취를 찾냐며 다그친다. “갈망한 것은 성취가 아닌 일생이요, 시간이다.” 말년의 사마의가 대신 답한다. 사마의는 “바란 것은 인심(人心)”이라고 결론짓는다. 역사 속 승자이면서 배신의 캐릭터인 사마의를 통일을 갈망하던 민심을 구현한 인물로 긍정한 셈이다.

 드라마 속에서 ‘전략적 경쟁자’ 미·중 관계를 읽었다. 미국은 제갈량, 최후의 승자 사마의가 중국의 희망이라는 해석이다. 오장원(五丈原)에서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승리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며 절규한다. 실력으로 이길 수 없지만 지지도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다. 역사 속 호랑이는 용과 겨루지 않았고, 천하는 호랑이 몫이 됐다. 현실도 이처럼 흘러갈지 주목해 본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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