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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공공의 적, 필요하면 법 바꿔 규제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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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청와대 직원들만 탄저균 테러에 대비해 백신주사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 인터뷰 #표현의 자유 침해할 위험 있지만 #자율 정화 맡기기엔 상황이 심각 #믿을 만한 팩트체크 기구 물색 중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진 주장들이지만 둘 다 허위사실로 밝혀졌다. 일명 ‘가짜뉴스’로 불리는 이런 게시물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1월 29일 올해 업무보고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민간의 팩트체크(사실확인) 기능을 지원하고 신고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업무보고 당시 방통위는 “가짜뉴스를 판별할 역량이 있는 민간 전문기구가 가짜뉴스로 판명한 뉴스에는 포털에 알려 ‘논란(diputed)’ 표시를 부착하고, 가짜뉴스에 대한 광고수익 배분을 제한하기 위해 포털의 약관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통위 발표 이후 정부가 지나친 시장 개입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민간단체가 가짜뉴스 여부를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난달 27일 경기도 과천 방통위에서 만났다. 고 상임위원은 2014년 6월 새정치민주연합 추천 몫으로 3기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 추천 몫으로 4기 방통위원에 연임됐다.

정부가 왜 직접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가.  

지난해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미디어에 유통됐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 특정 기업의 가치와 관련된 정보를 악의적으로 유통하는 것도 문제다. 통상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이런 것들이 정치·사회·경제·문화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가짜뉴스는 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회적 불신과 갈등을 유발해서 공동체 유지에 해악이 되는, 공동체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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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란 게 뭔가. 어디까지 가짜뉴스 검토 대상인가.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를 올해 11월까지 정리할 계획이다. ‘청와대 직원들만 탄저균 백신을 맞았다’거나 '수감 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수감 사진’이라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도 조작된 가짜뉴스다. 지난해 한 탄핵 반대단체는 가짜뉴스로 채운 발행물을 신문처럼 인쇄해서 수십만 부를 배포했다. 현재 국회에서 가짜뉴스 대책으로 발의된 개정안들에선 공통적으로는 ‘정치적ㆍ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 유통하는 자가 허위사실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타인을 속일 목적으로 언론보도 형태로 유통하는 것’을 가짜뉴스라고 본다.

(※현재 국회엔 가짜뉴스 유포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5건과 국가정보화 기본법 개정안 2건이 계류 중이다.)

흔히 ‘찌라시'로 불리는 것도 가짜뉴스 검토 대상인가. ====

어떤 의도를 갖고 특정 기사 형식으로 유통된 정보는 명백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찌라시도 온·오프라인 간행물에 기사 형식으로 유통된다면 가짜뉴스 검토 대상이다. 기존 언론사들은 내부 검증 시스템이 있고 언론 기사에 문제가 있으면 관계 법령에 따라 피해자가 구제받을 제도도 있다. 하지만 언론이 아닌 주체가 SNS에서 언론 기사를 가장한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통하는 건 규제 적용을 안 받는 사각지대에 있다. 이게 문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영역은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서는 이유는 가짜뉴스가 방치해선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그동안 '가짜뉴스 문제를 민간 자율에만 맡겨서는 자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곳곳에서 많이 전달받았다. 올해 정부가 이 아젠다를 제시하고 논의를 통해 의견을 모아가겠다는 것이다.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법으로 언론ㆍ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때는 (인터넷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가 허위사실을 주장했단 이유로 구속 기소됐다가 후에 무죄판결을 받은) ‘미네르바 사건’ 때도 문제가 됐듯 과잉 금지ㆍ명확성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기존 법의 개념과 정의를 보완해서 언론의 형태를 가장한 가짜뉴스를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게 공익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법 개정 검토할 생각이다.

(※일명 미네르바 사건은 2008년 포털사이트 경제토론방에 정부의 외환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박대성씨가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반으로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 해당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은 2010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해 삭제됐다.)

가짜뉴스 판별하는 역할을 민간기구에 맡길 경우, 공정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나.

가짜뉴스가 일으키는 피해도 문제지만,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매커니즘이 문제다. 이 단계에서 규제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되기 때문에 저희가 민간 자율기구가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검토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민간기구나 연구소들 여럿 중에서 역량과 신뢰성을 검증한 후 정부가 그 기구를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와 언론사 26곳이 참여하는 ‘서울대 팩트체크센터’ 같은 곳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역량과 신뢰성이 확보된다면 특정한 한 곳만 지원할 이유는 없다.  

(전혜선 방통위 인터넷윤리정책과장은 “포털이 인터넷기업협회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등과 함께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가짜뉴스로 의심되는 기사에 ‘논란’ 딱지를 붙이고, 광고 수익을 배분하지 않는 것은 인터넷 기업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정부가 직접 광고수익 배분을 간섭하려는 게 아니다. 광고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룰을 정하면 된다. 지금도 일부 인터넷 기업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가 임의로 기준을 적용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가짜뉴스의 생산 유통을 규제하기 위해선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을 방치하는 사업자들에 대해서 규제를 두는 방안이 필요하다. 민간기업에 사회적 책무를 요구하는 것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요구다. 방송 사업자들의 경우 내부 모니터링 심의팀이 있는데, 포털에도 자체 심의팀을 더 강화한다면 자정 작용이 더 잘 되지 않겠나 기대한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입법을 정비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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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는 올해 11월까지 인터넷 사업자들과 협의해 가짜뉴스 신고를 활성화하고 광고 수익 제한, 논란(disputed) 표시 부착 등 규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국내외 인터넷 기업들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터넷 기업 관계자는 “다양한 인터넷 게시물 중에서 무엇을 ‘가짜뉴스 논란 대상’으로 볼지 정하기부터 쉽지 않은 일인데, 결국은 그런 게시물에 대한 책임을 민간 기업에 묻겠다는 얘기로 들린다”며 “부담스럽고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주장과 사실이 뒤섞인 표현물이 매일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특정 민간기구가 일일이 판별하기 어렵다”며 “사용자가 스스로 이를 판별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팩트체크센터를 맡은 윤석민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법적인 규제로 가짜뉴스를 해결하기보다는 인터넷상의 정보에 대한 자율적인 팩트체크(사실확인)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포털이 가짜뉴스를 스크리닝하고 차단해야 한다는 식으로 포털에 지나치게 책임을 물으면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수련ㆍ노진호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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