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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투’ 한 달 … 권력형 성폭력 척결하라는 주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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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미투(#MeToo)’ 움직임이 한 달을 맞았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폭로 이후 ‘미투’의 외침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문화예술계, 교육계, 법조계, 종교계, 체육계를 망라했다. 예술이란 미명 아래 성폭력을 자행해온 문화권력의 민낯이 드러났다. 진보적 예술가는 물론이고 정의를 외쳐온 사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3월 개강을 맞은 대학가도 들썩거리고 있다. 관료주의나 서열주의가 팽배한 공무원 사회나 군·경찰, 정치권이나 재계, 의료계 등도 예외가 아닐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 중 이윤택 연출가에 대해서는 28일 피해자 16명이 이씨를 검찰에 정식 고소했다.

전방위에서 터져나온 성폭력 피해 고발 #개인 일탈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양성평등적 조직문화 만드는 계기돼야

전방위로 번지는 ‘미투’는 성폭력의 본질이 권력관계에서 위계와 강요에 의한 것임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감독과 배우 등 조직에서 우월한 지위의 남성이 낮은 위치의 여성을 대상으로 벌인 ‘권력형 범죄’다. 권력의 주변인들은 이를 은폐 방조했다. 침묵의 카르텔이다. 남성 중심적 상명하복 조직문화 속에서 피해자들은 보복과 불이익이 두려워 쉬쉬해왔고 10년, 20년 만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일부 가해자는 사과의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정성이 의심스럽고, 당장 여론을 무마하거나 추후 법적 공방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마련하기 위해 면피성 사과라는 지적이 많다. 연출가 이윤택은 사과 기자회견마저 각본에 따라 연습했고, 작가회의가 징계를 예고한 고은 시인은 아직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만삼 신부가 주임신부로 재직하던 성당의 평신도회가 “3일 정도 보도거리가 없으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신도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사제의 성폭력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이에 비난이 거세지자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는 28일 "교회·사회법에 따라 엄정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미투를 놓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권의 행태는 분노를 자아냈다. 미투가 좌우를 떠나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정치권이, 사회구조적 문제로서 성폭력 근절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의 움직임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목소리다. 철저한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있어야 하고, 폭로 이후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또 다른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회 전반이 양성평등적 인식을 공유하고 왜곡된 가부장적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미투의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부상, 권력형 갑질에 대한 강한 비판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 등 일련의 사회문화적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유명인 몇 사람의 센세이셔널한 추락에 그쳐선 곤란하다. 차제에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권력형 성폭력 문화를 뿌리 뽑으라는 시대적 요청에 답을 내놓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