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 처음 만든 독일, 도시서 운행 금지 하려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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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차 개발한 독일서 "지자체가 디젤차 운행 금지 가능" 판결 

독일연방행정법원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디젤 차량의 도시 진입 금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독일연방행정법원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디젤 차량의 도시 진입 금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디젤 차량을 개발한 독일에서 기준치 이상의 배기가스를 방출하는 디젤 차량의 운행을 지자체가 금지할 수 있는 판결이 나왔다.

연방행정법원, 2개 도시서 금지요구 환경단체 손 들어줘 #배기가스 '유로6' 미충족 차량 900만대가 대상 #정부 "배기가스 저감장치 비용 자동차업계가 대라" #대기 오염 우선한 근거 마련돼 자동차업계 타격 예상 #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27일(현지시간) 슈투트가르트와 뒤셀도르프 시 당국이 공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연방 규제와 상관없이 배기가스 수준 유로6을 만족하지 못하는 디젤 차량의 운행을 막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유로6은 유럽연합(EU)이 도입한 디젤차 배기가스 규제 단계로, 대형 경유차의 경우 질소산화물(NOx)을 유로5(2g/kWh) 단계보다 적은 0.4g/kWh까지만 허용한다. 국내 디젤 신차에도 2015년부터 적용됐다.

 당초 환경단체들이 두 시 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 법원은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시를 관할하는 주 정부 두 곳이 과도한 규제라며 항소했지만, 항소심도 자동차업계보다 환경단체의 주장이 옳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다만 디젤차를 업무로 이용하는 소매상은 규제에서 예외로 할 수 있도록 했다. 디젤차 소유주들은 중고차 가격이 내려가도 당국에 보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결정도 함께 내렸다.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슈튜트가르트와 뒤셀도르프 시 당국이 일정 수준 이상 배기가스를 방출하는 디젤 차량의 운행을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AP=연합뉴스]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슈튜트가르트와 뒤셀도르프 시 당국이 일정 수준 이상 배기가스를 방출하는 디젤 차량의 운행을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AP=연합뉴스]

 이 같은 조치가 실제 시행되면 디젤차를 개발해 생산해온 독일 자동차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유로6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디젤 차량을 가진 운전자들도 규제가 실시되는 도시에 진입할 수 없어 불편을 겪게 된다.

 이번 판결로 이들 도시가 당장 디젤차 운행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당초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 중인 슈투트가르트 시는 지난해 디젤차의 도심 진입을 막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디젤차 소유자들이 반발하고 저소득층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참작해 시행하지 않았다.

 디젤차 소유주들이 혼란스러워하자 독일 정부는 디젤차가 여러 도시에서 당장 금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키기에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판결에 대해 “독일의 모든 운전자에게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며 “정부는 지자체들과 향후 조치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차량으로 정체를 빚은 슈투트가르트 도로. [AP=연합뉴스]

차량으로 정체를 빚은 슈투트가르트 도로. [AP=연합뉴스]

 바르바라 헨드릭스 환경부 장관은 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시민이 도시에서 깨끗한 대기 질을 누릴 권리를 확인시켜 줬다"며 ”자동차 업체들이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다는 비용을 부담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유로5 이하 수준에 맞춰 제작된 디젤 차량을 유로6 기준을 충족시키게 만드는 비용을 소유주가 아니라 업계가 떠맡으라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규제가 도입될 것을 우려해 당장 디젤차를 중고차 시장에 가져가 헐값에 팔지 말고 규제가 언제 어떻게 도입되는지,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지를 보고 결정하라고 권유했다.

환경단체 회원이 독일 연방행정법원 앞에서 '깨끗한 공기는 우리의 권리'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환경단체 회원이 독일 연방행정법원 앞에서 '깨끗한 공기는 우리의 권리'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환경단체들은 법원의 판결을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니클라스 시너 그린피스 자동차 전문가는 “독일에서만 1만3000명이 디젤 배기가스 때문에 일찍 사망하고 심장병과 폐암, 어린이 천식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독일에선 지난해 대기오염이 기준치를 넘어선 도시가 70여 곳에 달한다.

 매연을 심하게 내뿜는 차량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확산하고 있다. 독일은 2030년, 영국과 프랑스는 2040년,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에 내연기관을 쓰는 자동차의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업계 볼보는 2019년부터 새로 출시되는 차량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으로만 출시할 예정이다.

배기가스 규제가 날로 강화하면서 독일 자동차업계는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AP=연합뉴스]

배기가스 규제가 날로 강화하면서 독일 자동차업계는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AP=연합뉴스]

 이 같은 계획과 함께 아예 도시 운행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다른 나라로 디젤 차량 규제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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