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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화 벗고 3단 변신 꿈꾸는 박승희 “디자이너 될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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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올림픽 빙상 두 종목에 출전한 박승희가 평창 마스코트 수호랑을 들고 패션디자이너로 변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올림픽 빙상 두 종목에 출전한 박승희가 평창 마스코트 수호랑을 들고 패션디자이너로 변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16위. 박승희(26·스포츠토토)가 지난 14일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에서 거둔 성적이다. 메달이 없어도 사람들은 박승희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2014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이었던 그가 새로운 종목에 도전한 결과라서다. 올림픽 폐막에 앞서 그를 스폰서인 VISA 하우스(홍보관)에서 만났다.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금 2·동1 #스피드 선수로 변신해 평창 출전 #어린시절 꿈 위해 틈틈이 패션 공부

박승희는 1000m 레이스를 끝낸 직후 눈물을 쏟았다. 관중석에 있던 어머니 이옥경씨 얼굴을 본 순간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는 “엄마, 언니(박승주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등 가족들이 응원하러 왔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데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경기 직후 인터뷰실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터트렸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 노진규가 생각나서였다. 쇼트트랙 대표 노진규는 골육종 때문에 2014 소치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박승희는 “진규가 하늘에서 많이 응원해 준 것 같다”고 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박승희는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땄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쇼트트랙이 싫어졌다. 그만하고 싶다”며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 전향을 선언했다. 그는 여자 500m 결승에서 엘리스 크리스티(영국)에 걸려 넘어지며 금메달을 놓쳤다. 그는 “쇼트트랙은 팀 동료들과도 싸워야 해 힘들었다. 관심은 감사한데 부담을 견디기 힘들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은퇴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박승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평창올림픽이었다. 그는 “소치올림픽 때 언니, 저, 동생까지 함께 국가대표가 됐고, 제일 행복했다. 그래서 평창도 동생과 같이 가고 싶었다. 어릴 때 했던 스피드스케이팅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전향을 결정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대표선발전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멘털이 강한 편이라 생각했는데도 4년간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꾼다. 4년 전으로 돌아가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옷맵시를 뽐내는 박승희. [박승희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서 옷맵시를 뽐내는 박승희. [박승희 인스타그램]

박승희는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겨달라”는 요청에 스피드 1000m에서 16위를 한 평창 대회와 쇼트트랙 2관왕을 한 소치 대회에 똑같은 90점을 줬다. 메달을 따지 못한 올림픽과 금메달 2개를 딴 대회를 똑같은 이유가 뭘까. 그는 “솔직히 아쉬웠는데, 부상 때문이다. 올림픽 한 달 전 코너를 돌다가 크게 다쳤다. 잘 탔는데 이상하게 다치게 됐다. 핑계로 들릴까봐 말은 안 했지만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종아리에 멍이 크게 들어 엄마가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한 번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마친 박승희는 이제 두 번째 변신에 나선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에 도전한다. 그는 틈날 때마다 패션쇼를 보러 갔고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의 옷맵시도 뽐냈다. 그는 “초등학교 때 꿈이 디자이너였다. 어찌하다보니 운동선수가 됐지만 디자이너에 관심이 많았다. 혼자 옷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올림픽 전에 개인 교습도 받았는데 운동에 집중하려 잠시 미뤘다”며 “여행을 다니며 좀 쉬었다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승희는 후배들이 잘 따라 지도자감이란 말도 많이 듣는다. 병영체험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매력을 발산해 ‘군인 체질’이란 찬사도 받았다. 하지는 정작 그는 “코치는 생각도 안 해봤다. 군인도 운동선수 생활과 비슷해 싫다”고 난색을 표했다.

2014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만난 박세영, 박승주, 어머니 이옥경씨, 박승희

2014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만난 박세영, 박승주, 어머니 이옥경씨, 박승희

박승희의 삼남매 중 국가대표는 이제 막내 박세영뿐이다. 박세영은 평창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5위에 그쳐 4위까지인 출전자격을 얻지 못했다. 박승희는 “동생 선발전은 항상 보러 갔는데 이번에는 못 갔다. 그래서일까. 동생이 떨어진 게 내 잘못 같다”며 “이제는 운동을 안 하니까 코치처럼 많이 도울 생각이다. 동생이 무뚝뚝한 편이지만 내 말은 잘 듣는다. 4년 뒤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가족 대표로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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