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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반려동물 1000만 시대 “내 새끼 놀이터 늘리고 장례식장 짓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쏟아지는 동물복지 법안들 

“‘보호자’로 (용어를) 바꾸면 그걸(동물을) 어떻게 팔아요.”(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

'동물복지=표' 관심 높은 정치권 #20대 국회 들어 60여 건 법안 발의 #문 대통령도 대선 때 5대정책 공약 #사람도 힘든데 … 시기상조론 #질소 살처분 5년간 150억 더 들고 #장례식장은 “혐오시설” 반대 막혀 #입법 더뎌도 현장선 앞서 나가 #애견 유치원·호텔 잇따라 생기고 #동물장묘업체 이미 100개 넘어

“자꾸 (식용) 소하고 (반려용) 개하고 똑같이 생각하면 안 돼.”(자유한국당 권석창 의원)

지난해 11월 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 한 법안을 놓고 여야 소속과 무관하게 격론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법안의 골자는 사육하는 소나 돼지 등 동물의 ‘소유자’라는 표현을 ‘보호자’로 바꾸는 것이었다. “동물을 일반 물건과 달리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명시하자”는 게 개정 취지였다. 여야 의원들은 “식용으로 판매되는 동물과 반려동물은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법안은 소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와 유사한 논쟁이 국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동물복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확산하면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사진 공모전수상작.

농림축산검역본부 사진 공모전수상작.

◆“반려동물인구 민심을 잡아라”=정치권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에 접어든 시대 상황을 꼽는다. 17대 국회에서 9건이 발의됐던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18대 18건 ▶19대 36건 ▶20대 50건으로 계속 늘었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동물복지 관련 법안은 총 60건이 넘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민간 동물의료 관련사업을 활성화하고 반려견 놀이터 확대를 위한 지자체 지원 등을 담은 ‘동물복지 5대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옛 바른정당의 반려동물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은 “1000만명의 민심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을 학대한 사람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동물장묘업체 ‘펫포레스트’에서 반려견의 입관식을 치르고 있다. [김현동 기자]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동물장묘업체 ‘펫포레스트’에서 반려견의 입관식을 치르고 있다. [김현동 기자]

◆“내 새끼 마지막 가는 길 지원해야”=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지난해 12월 지자체가 동물장묘시설을 설치하고 정부가 예산 범위 안에서 이를 지원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반려동물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내용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팀 이명아 주무관은 “자식 같은 동물에게 장례식을 치러주고 싶어하는 국민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공공 동물장묘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려동물 장묘시설을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반대 목소리도 크다. 실제 대구광역시와 김해시에서는 지자체와 장묘업체 간에 행정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민홍철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인가 밀집지역과 학교 근처에는 동물장묘시설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도 각각 제출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민 의원은 “동물장묘시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 장묘시설에 대한 지자체와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법안

동물복지 법안

입법 진행 상황은 더딘 반면 일선 현장에서는 반려동물 유치원과 호텔, 장례식장 등이 잇따라 생기고 있다. 생을 마감한 반려동물의 운구부터 화장까지 담당하는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라는 자격증도 생겼다. 현재 정식 등록된 동물장묘업체는 25개다. 등록되지 않은 업체까지 합치면 100개가 넘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9억원을 투자해 공공장묘시설 2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존엄 살처분’ 법안도=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의 전염병에 걸린 가축을 살처분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은 법안도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축을 살처분 할 때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법안 2건이 20대 국회에서 논의됐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동물을 살아있는 상태로 매몰하면 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하는 법안을, 같은 당 강창일 의원은 살처분 때 질소가스를 사용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내에서는 흔히 이산화탄소를 쓰지만,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질소가스 사용을 권장하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국립축산과학원 강석진 양돈과 수의연구관은 “동물복지는 무조건 동물을 죽이지 말고, 먹지 말라는 게 아니다. 동물을 인간 편의에 맞게 이용은 하되 살아있을 동안 최대한 보호하고 존중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강 연구관은 지난 2011년 네덜란드에서 파견근무를 하면서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살처분하는 방식을 접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는 동물의 점막을 자극해 극심한 고통을 주는 반면, 질소가스를 사용하면 가축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산소증으로 기절하게 된다. 국립축산과학원은 4년간 2억원을 투자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안락사용 질소 거품 생성 장비’를 개발했으나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다. 강 연구관은 “질소가스를 이용한 살처분은 일종의 존엄사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법안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동물 10만 마리를 살처분 할 때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면 평균 1510만원, 질소가스를 이용하면 4360만원으로 2850만원이 더 든다. 연평균 105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우리나라에서 질소가스 사용을 의무화하면 5년간 약 15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동물복지’ 대 ‘시기상조’=동물복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처럼 엇갈리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꾸준히 발의되고 있다. 최근엔 음식물 쓰레기를 동물에게 주지 못하게 하는 법안, 동물보험을 활성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권석창 의원은 “지금 사람 복지도 안 되는데 동물복지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동물을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축산업에서는 동물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으로 여기는 측면도 있다. 예전보다는 동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두 관점이 충돌해 법안 통과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예전에는 개고기에 반대해도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다.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전에 동물과 더불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의식을 개선하는 운동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전진경 상임이사는 “동물 관련 법안의 국회 소관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의 낙후된 인식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하듯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장기적 시각을 갖고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아 기자 kim.ji a@joongang.co.kr

[S BOX] 독일서 개 키우면 14만~90만원 세금, 네덜란드엔 동물경찰도

지난 1월 스위스에서는 살아있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을 수 없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전기충격기를 사용하거나 머리를 때려 랍스터를 기절시킨 후 조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랍스터가 고등 신경계를 갖고 있어 고통을 느낀다는 학자들과 동물보호운동가들의 주장이 반영됐다. 이 법에 따르면 살아있는 랍스터를 얼음 위에 올리거나 생수에 넣은 채로 운반해도 안 된다. 바닷물과 비슷한 염분이 들어있는 물에 넣어 옮겨야 한다.

독일에선 개를 키우면 별도의 세금을 낸다. 바로 ‘동물세’다. 키울 능력이 없으면서 귀엽다는 생각만으로 개를 마구잡이로 입양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주마다 세액이 다른데, 개 한 마리당 1년에 14만~90만원 정도다. 지난 2016년 베를린에서 걷힌 동물세는 약 145억원이다. 이 돈은 유기동물 보호센터에 있는 동물을 위해 사용된다.

네덜란드에는 ‘동물 경찰’이 있다. 지난 2011년 동물 경찰 제도가 신설됐다. 이들은 다른 경찰 업무도 담당하지만, 동물 학대를 집중적으로 단속한다. 경찰관이 되기 전에는 경찰대학에서 동물복지법을 비롯한 동물 관련 전문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현재 약 250명의 동물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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