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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고학력·기혼일수록 아이코스 많이 피워"…이유는 '냄새'

중앙일보

입력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 매장에 전용 담배 제품이 진열돼있다. 그 뒤로 흡연자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 매장에 전용 담배 제품이 진열돼있다. 그 뒤로 흡연자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회사원 박 모(32) 씨는 결혼 직후인 지난해 11월 기존에 피우던 일반 담배(궐련)와 작별했다. 그 대신에 KT&G에서 판매하는 궐련형 전자담배(가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흡연량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루에 15개비 안팎을 피우던 그는 궐련형 전자담배로 바꾸고선 12~15개비 정도가 됐다. 그런데도 제품을 바꾼 이유는 냄새 때문이다. 박 씨 주변에도 그와 같은 이유로 궐련형 전자담배를 택한 사람이 대다수다.

흡연 경험자 283명 심층 조사한 결과 공개 #흡연자 중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 13.4% #'냄새 나지 않아서' 선택한 비율 절반 넘겨 #"담배 끊기 위한 과정보다 궐련 대체 역할" #여성과 전자담배 유경험자가 더 많이 이용 #"정부가 나서서 해로움 알리는 캠페인해야"

그는 "전적으로 아내 때문에 궐련형 전자담배로 갈아탔다. 아내가 예전보다 담배 냄새가 덜 난다고 좋아한다"면서 "이젠 흡연구역에 들어가면 기존 담배 냄새가 엄청 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담배를 끊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국내 담배업체 KT&G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 이들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담배업체 KT&G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 이들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기혼자와 젊은 층, 고학력층일수록 아이코스ㆍ글로ㆍ릴 같은 궐련형 전자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궐련형 전자담배로 옮겨가는 주된 이유는 냄새가 덜 난다는 것이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흡연 경험이 있는 남녀 283명을 대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의 사용 양상ㆍ이유 등을 심층 조사한 결과를 23일 공개했다. 최근 인기가 커지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흡연 행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국내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황 교수에 따르면 현재 흡연 중인 216명 가운데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를 사용해본 비율은 13.4%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 100명 중 13명은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운다는 의미다. 이를 매일 쓴다는 사람은 10명 중 7명(69%)에 달했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이유는 '냄새'가 가장 컸다. [자료 황승식 교수]

궐련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이유는 '냄새'가 가장 컸다. [자료 황승식 교수]

 궐련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이유로는 ‘냄새가 나지 않아서’가 55.2%로 절반을 넘겼다. 덜 해로운 것 같다는 응답자가 17.2%, 금연에 도움이 될 거 같다는 비율도 10.3%였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센터 조사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 흡연자와 주변 사람들 모두 냄새 때문에 일반 궐련 담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했다. 이 때문에 기존에 담배를 피우지 않던 회사 회의실ㆍ화장실이나 집안 등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를 몰래 피우는 식의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궐련형 전자담배 선택이 금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주목했다. 황승식 교수는 "담배 종류를 바꾸는 건 자기 몸에서 냄새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면서 “단계적으로 담배를 줄이거나 끊기 위한 목적보다는 기존 궐련의 대체재로 궐련형 전자담배를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 기기가 전시된 매장 내부. 이러한 제품을 찾는 이유는 냄새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 기기가 전시된 매장 내부. 이러한 제품을 찾는 이유는 냄새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특히 학력이 높아질수록 궐련형 전자담배를 더 많이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졸 이하와 비교했을 때 대학ㆍ전문대졸이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울 확률은 3.11배, 대학원 이상은 4.36배로 뛰었다. 또한 기혼자와 20~30대, 여성이 상대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혼자가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2.21배, 20~39세는 65세 이상 노인의 2.04배로 나타났다.

황 교수는 "고학력자는 새로운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데다 궐련형 전자담배 기곗값이 비싸다는 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기혼자는 미혼자와 달리 자녀와 배우자가 있으니까 피해를 덜 주기 위해서 가열 담배를 피우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니코틴 액상’ 등 과거 유행했던 전자담배를 사용해본 사람도 미경험자와 비교해 궐련형 전자담배를 택할 확률이 3.37배에 달했다. 흡연 방법이 기기를 활용한 전자식으로 비슷하다는 '익숙함'이 영향을 미쳤다. 황 교수는 “전자담배가 일종의 발판으로서 궐련형 전자담배로 쉽게 넘어가도록 도와주는 걸 시사한다. 이번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전자담배도 금연 정책 차원에서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미래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 궐련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증가하고 있다. [중앙포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 궐련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증가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궐련 제품은 34억4000만갑 팔렸고, 5월 판매를 시작한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는7870만갑 가량 판매됐다. 지난해 전체 담배 판매량의 2.2%를 차지한다. 이러한 수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올해 1월 팔린 담배 제품 중 궐련형 전자담배는 9.1%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점유율(6.1%)에서 3%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황 교수는 "지금은 고학력ㆍ젊은 층 중심으로 쓰고 있지만 여론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다른 흡연자나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게 나왔는데 좋다' 식으로 소비를 확대시킬 여력이 크다"면서 "담배 회사가 더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면 저학력ㆍ저소득층이나 여성이 궐련형 전자담배를 택하는 경우가 늘면서 흡연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크게 늘면서 금연 의지가 줄어들고 간접 흡연의 폐해에 둔감해지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궐련형 전자담배 안전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궐련만큼 해롭다는 점을 알리는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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