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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면 ‘미투’ 터져나오는데...구경만 하는 여성가족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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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공개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 선 연출가 이윤택씨. 그의 성범죄를 증언하는 ‘미투(#MeToo)’가 이어지는 가운데, 21일에는 연희단거리패 오동식 배우가 이씨의 ‘기자회견 리허설’을 폭로했다. [뉴스1]

지난 19일 공개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 선 연출가 이윤택씨. 그의 성범죄를 증언하는 ‘미투(#MeToo)’가 이어지는 가운데, 21일에는 연희단거리패 오동식 배우가 이씨의 ‘기자회견 리허설’을 폭로했다. [뉴스1]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한 달째 구경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 여성들이 불이익과 사회적 시선을 홀로 감당하고 있지만, 정작 여가부는 이들이 겪는 2차 피해에 눈 감고 있어서다.

미투 운동은 지난달 26일 서지현 진주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2010년 당시 법무부 소속 안태근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시인 고은 씨, 연극연출가 이윤택ㆍ오태석 씨, 배우 조민기씨, 인간문화재 하용부 씨 등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미투’가 터져 나오지만 지난 한달여 동안 여가부가 내놓은 유일한 대책은 지난 20일 내놓은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성평등 문화 확산 10대 과제' 뿐이다. ‘성평등 교육’과 ‘성평등한 미디어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어 22일 이숙진 여가부 차관은 스토킹ㆍ데이트폭력 피해방지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 자리를 빌려 사회 각 분야에서 피해를 알린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기 위해 피해사실을 알리고 미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여러분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성희롱과 성폭력을 없애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News1]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News1]

하지만 피해자들은 당장 2차 피해에 시달리며 소송 비용 등을 걱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한 문화계 인사는 “소송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막막하다. 여가부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서 검사의 변호인을 맡았던 김재련 변호사는 “지금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료법률지원 서비스 등이 있는데 여가부에서 피해자에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2차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선 사실 적시를 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투’에 동참하는 이들이 피해 사실 공개 이전에 변호사와 상의해 어떤 부분까지 공개할지 등을 상의하는게 좋은데 여가부가 나서 이런 부분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면 초기 상담부터 소송, 의료 지원 등 종합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스탑 센터가 있어야 한다. 현재 여가부 산하에 여성 긴급 전화 1366이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다. 전국적으로 센터를 늘려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의 한 회원이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의 한 회원이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성폭력 사건을 진상 조사하고 재발방지ㆍ피해자 보호를 전담할 정부의 컨트럴타워도 모호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부처별로 개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검찰청은 대규모 성폭력 진상조사단을 꾸렸고, 법무부는 성범죄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서 검사 사건과 함께 검찰ㆍ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직권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 달부터 신고ㆍ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성폭력 예술인에 대한 작품 지원을 배제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김재련 변호사는 “미투가터져 나올 때마다 분야별로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데 여가부가 이런 것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여가부가 성폭력 피해 근절을 위한 컨트럴타워가 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위원회 차원에서도 관련 법을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겠다. 국무총리실 내에 별도의 전담 기구를 두도록 제안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중열 여가부 대변인은 “오는 27일께 지난해 11월 발표한 공공부문ㆍ민간 기업 성희롱 종합대책 가운데 공공부문 대책을 보완해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상담ㆍ지원 제도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제도가 어떤 것이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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