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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속의 강철주먹' 마크롱, 대규모 춘투 앞두고 개혁 집념 불태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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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프랑스 경제에 훈풍이 불어오고 있다.
 분기별 실업률이 2009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지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1년 이후 최고치다.
 이런 변화는 역대 최연소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개혁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역설이 나타났다. 최근 마크롱의 지지율이 인기가 없기로 유명했던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같은 시기보다 낮아졌다. '프랑스 병'을 뜯어고치려는 개혁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면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아미엥의 월풀 공장을 방문해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AFP]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아미엥의 월풀 공장을 방문해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AFP]

 하지만 집권 2년 차를 맞은 마크롱 대통령은 개혁의 집념을 더 불태우고 있다.
 공무원 구조조정에 이어 ‘철밥통’으로 이름 높은 국가철도공사(SNCF) 개혁에 나섰다. 이에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예고하고 마크롱의 개혁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다음 달 22일(현지시간) 대규모 ‘춘투’가 마크롱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유럽의 병자' 프랑스 분기별 실업률 2009년래 최저 #떠났던 기업 돌아오는데 마크롱 인기는 낮은 '역설' #국철 개혁 나서자 3월 22일 노조 대규모 '춘투' 예고 #마크롱의 개혁 집념 "그게 여러분이 나를 뽑은 이유" #

지난해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노동 및 사회개혁 정책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AFP]

지난해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노동 및 사회개혁 정책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AFP]

 사실 거시 지표는 마크롱 편이다. 지난 15일 프랑스 통계청(INSEE)은 지난해 4분기 실업률이 전 분기보다 0.7%포인트 낮아진 8.9%(해외영토 포함)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낮다. 통계청은 “프랑스 실업률이 유로존 평균(지난해 12월 8.7%)에 근접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률은 모든 연령에서 하락했지만 특히 15~24세 청년층에서 1%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고용이 활발해지면서 일부 기업은 숙련 노동자 부족을 걱정할 정도까지 됐다. 경제싱크탱크 OFCE의 분석가 브루노 듀코드르는 “지난해 실업자를 줄이기 충분한 수준의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말했다.

 GDP 성장률도 지난해 1.9%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다 올해도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기업신뢰지수 역시 109로, 10년래 최고 수준을 보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5일 프랑스 재무장관과 회동에서 “프랑스에서 시작된 개혁의 질과 야망은 괄목할 만 하다"고 호평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튀니지를 방문한 뒤 귀국길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튀니지를 방문한 뒤 귀국길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

 마크롱은 취임 후 노동규제 완화와 기업활동 활성화를 우선 추진했다. 기업의 해고 권한을 확대하고 노조의 근로조건 협상권을 약화한 데 이어 실업급여 개편에도 착수했다. 유로존 최고 수준이던 법인세(33%)를 2022년까지 25%로 낮추기로 했고, 자본이득과 배당금에 대한 과세 방식도 기존 누진세율 대신 30%의 단일세율로 바꿨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가 최신 신경과학연구소를 파리에 세우기로 하는 등 높은 세율을 피해 프랑스를 떠났던 기업인들인 ‘비둘기'가 속속 마크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그런데도 상승하던 마크롱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18일 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 마크롱의 국정운영을 호의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35%에 불과했다. 올랑드 전 대통령의 같은 시기 지지율(36%)보다도 낮았다. 성장은 가속하고 있지만 인기는 떨어진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OFCE는 국민 대부분이 개혁의 혜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개혁의 역설이다. 이 기관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담배와 유류 등에 대한 간접세를 올리면서 상위 2% 부유층은 혜택을 보는 반면 중산층 이하는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퍼졌다. 공공서비스 예산 축소도 저소득층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봤다. 마크롱 정부는 한달 내외 단기 군 복무제 도입과 대입제도 개편 등의 정책으로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취임사에서 마크롱은 "오랫동안 쇠퇴해온 '확신'을 국민에 돌려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지만 프랑스 국민의 회의적 시각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AFP 통신은 풀이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럼에도 중단 없는 개혁을 선언했다. 집권 2년차인 올해 신년사에서 “2018년에도 철저한 변혁을 계속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나를 뽑은 이유”라고 강조했다.

 칸타르 소프레가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51%는 구매력 향상을 가장 큰 관심사로 꼽았다. 실질 소득 증가를 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크롱은 “구매력에 관해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똑같다. 모두가 더 많이 원한다"고 응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임 정부들이 손쉽게 선택했던 ‘빠른 대응’은 배제했다. 정부가 공공 지출을 늘리거나, 부채로 채워지는 세금 감면 등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마크롱은 “국민이 나를 신뢰하든 신뢰하지 않든 이 단계에 압도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면 돌파 의지를 보였다.

프랑스 철도 [AFP=연합뉴스]

프랑스 철도 [AFP=연합뉴스]

 마크롱의 집권 2년차 타깃은 비효율의 대표작인 국철이다. 마크롱은 장시릴 스피네타 전 에어프랑스 최고경영자에게 의뢰해 국철의 방만 경영을 수술할 보고서를 받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농어촌 군소 노선을 과감히 없애고, 평생 고용 보장과 조기퇴직 혜택 등을 없애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철 근로자들은 다른 민간부문(평균 62세)보다 낮은 평균 57.5세에 일찍 정년퇴직한 후 온전히 연금 혜택을 누려왔다. 연간 적자만 30억 유로(약 4조원)로, 올해 누적부채는 500억 유로(약 67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가 다음 주부터 구조조정 협의를 시작하자고 하자 프랑스 제2의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은 다음달 22일 전국적으로 집회를 열고 향후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반발했다. 그날은 이미 공무원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날로, 대규모 춘투가 벌어지게 됐다.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야권의 공격에 마크롱은 “나는 성공을 믿지만 소수의 이기심과 냉소만을 만족하게 하는 성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해소될 수 없는 분열이 사회를 좀먹고 있다"며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일 아침 스스로 물어보라”고 덧붙였다. AFP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라 “고 한 1961년 취임식 연설을 상기시킨다고 소개했다.

 올해 마흔인 마크롱은 투자은행 출신의 엘리트다. 잘생긴 외모에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한다. 사회당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보좌관과 경제산업장관을 지낸 뒤 프랑스 정치판을 바꿔놓겠다며 시민참여형 정치운동을 시작해 집권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노동개혁에 반발해 노조가 마르세유에서 벌인 시위 모습. [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노동개혁에 반발해 노조가 마르세유에서 벌인 시위 모습. [AFP=연합뉴스]

 마크롱의 갈 길은 멀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혁에 매진 중인 마크롱이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나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일궈낸 사회적 혁신을 조국에 안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개선되지 않고 있는 재정적자 등 숙제도 여전하다. 의회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거세지는 춘투와 낮은 지지도는 마크롱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총선 이후 지난 4일 처음 실시된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마크롱이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는 두 곳 모두에서 공화당에 패했다. 개혁에 성공하더라도 본인과 소속 정당은 손해를 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서방 언론은 마크롱에게 ‘벨벳 장갑 속의 강철 주먹'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의 연설은 부드럽지만 내용에 결기와 단호함이 담겨 있다. 지구촌엔 마크롱 같은 개혁 승부사를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제3세계는 물론 유럽 곳곳도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포퓰리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세계는 유럽의 젊은 리더 마크롱의 앞날을 더 주목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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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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