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3월 홍합 관련 뉴스가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 제주도민이 시장에서 산 홍합에서 진주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전문가 감정 결과 최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지름 1.5㎝의 자연산 흑진주였다. 이후에도 홍합을 먹다가 진주가 나왔다는 소식들이 잊을 만 하면 이어졌다.
해양수산과학원, 토종홍합과 패각이용한 흑진주 생산 연구 #2년 뒤 흑진주 기대 …수입 의존 흑진주 생산통해 소득늘려
31년 후인 지난 7일 전남 여수시 화정면에 위치한 전남 해양수산과학원 동부지부 여수지원(이하 해양수산과학원). 박충국(40) 연구사가 시험장 안에 놓인 파란색 수조 속에 든 토종 홍합 ‘참담치’들을 정성스럽게 살펴봤다. 박 연구사는 “2년 뒤에는 이들 참담치에서 신비로운 흑진주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짬뽕이나 파스타에 들어가는 식재료로만 인식되던 홍합을 이용한 이색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토종 홍합인 참담치와 껍데기, 즉 패각을 이용한 흑진주 생산 연구다. 과거 국내에서 몇 차례 시도는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해양수산과학원이 이번 연구에 돌입한 시기는 지난해 6월이다. 진주층이 잘 발달한 참담치 패각 안쪽 부위로 흑진주 생산이 가능해 보이지만 관련 연구는 이제까지 없었다. 흑진주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해양수산과학원 측은 우선 건강한 참담치 150마리를 엄선했다. 이후 물과 먹이 공급량을 조절하는 등 5개월간 세심한 관리에 들어갔다. 진주 생산에 적합한 생리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후 지난해 12월 생식 세포를 형성하는 생식소가 건강한 상태의 90마리를 골라냈다. 이들 참담치에는 진주 생산을 위한 기본 재료인 지름 7㎜ 크기의 하얀 핵을 삽입했다. 대왕조개의 껍데기를 가공해 만든 것이다.
핵 위에는 또 다른 참담치의 껍질에서 사각형 모양으로 잘라낸 외투막 절편을 올렸다. 핵의 표면을 덮어 진주층을 형성하기 위한 재료다. 임창용 연구사(37)는 “참담치가 핵을 이물질로 인식해 뿜어내는 분비물이 점차 쌓이고 쌓여 2년 뒤에는 지름 1㎝ 안팎의 흑진주가 될 것”이라며 “차츰 이 기간을 줄여나가 생산성을 높여 흑진주를 대중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2년이 넘는 장기 연구 대상인 참담치는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 전체 90마리 중 여수 거문도 해역에서 자연 상태로 커가는 30마리를 제외하고 60마리는 수조 생활을 한다. 연구사들은 이들 참담치에게 먹이기 위한 케토세로스 등 미세조류를 직접 배양하고 수조에 신선한 바닷물을 공급한다. 수온은 10도 안팎으로 유지한다.
이번 연구는 고가인 데다가 갈수록 생산량이 줄어드는 참담치 양식 기술 개발 등 산업화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양수산과학원에 따르면 2009년 470t이던 국내 참담치 생산량은 2016년 138t으로 크게 줄었다.
여수 삼산면이 주산지인 참담치는 현지에서도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식재료다. ㎏당 1만원으로 짬뽕에 주로 들어가는 홍합인 지중해담치(㎏당 600원)에 비해 16배 이상 가격이 높아서다. 참담치는 대부분 서울 지역 고급 일식집에 공급된다.
박충국 연구사는 “참담치 양식 및 진주 생산 연구가 모두 성공하면 어민들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참담치를 맛보고 진주를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여수=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