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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시작했는데...이제와 '자유의 여신상' 빼라고? 일관성 없는 IOC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 니콜 헨슬리 마스크에 자유의 여신상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원 기자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 니콜 헨슬리 마스크에 자유의 여신상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원 기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일관성 없는 일처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는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들의 헬멧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상' 그림을 지우는 방안을 놓고 미국아이스하키협회와 IOC가 현재 논의 중"이라고 13일 전했다. 미국 여자대표팀 골리 니콜 헨슬리는 헬멧 왼쪽에, 또 다른 골리 알렉스 릭스비는 마스크 턱 쪽에 자유의 여신상 이미지를 새겼다. 데이브 피셔 미국아이스하키협회 대변인은 "IOC가 '이미지'를 지워야 한다고 전해와 현재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아이스하키 골리들은 마스크에 여러 의미를 담아 화려한 그림과 글을 새겨넣는다. 이 때문에 IOC는 규정에 위반되는 내용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림픽 출전국의 골리 마스크 도안을 미리 검사한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 맷 달튼은 마스크에 새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그림을 최근 테이프로 가렸다. IOC가 이순신 장군 그림을 '정치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IOC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과거 규정 위반 사례도 전달했는데, '자유의 여신상' 그림도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맷 달튼 마스크에서 사라진 이순신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8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경기. 1피리어드 한국 대표팀 골리 맷 달튼(왼쪽 사진)의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 그림이 지워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3일 열린 카자흐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이순신 장군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 맷 달튼 모습. 2018.2.8   tomatoy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맷 달튼 마스크에서 사라진 이순신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8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경기. 1피리어드 한국 대표팀 골리 맷 달튼(왼쪽 사진)의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 그림이 지워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3일 열린 카자흐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이순신 장군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 맷 달튼 모습. 2018.2.8 tomatoy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7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 니콜 헨슬리와 알렉스 릭스비는 자유의 여신상 그림이 있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 관계자는 "우리 선수들의 골리 마스크가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올림픽 경기 때 (미국에서 가져온)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인들의 '자유 정신'을 상징한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난 11일 핀란드와 올림픽 첫 경기를 치렀다. IOC는 미국이 첫 경기를 치를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규정을 위반했다며 그림을 지우라고 나섰다.

소치 올림픽에서 미국 골리 제시 베터가 쓴 마스크. [AP=연합뉴스]

소치 올림픽에서 미국 골리 제시 베터가 쓴 마스크. [AP=연합뉴스]

'자유의 여신상'을 "정치적"이라고 판단한 것도 일관성이 없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그림에 대한 제재가 없었다. 소치 대회에서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 제시 베터는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전했다. IOC가 베터의 그림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베터는 소치올림픽 전에 IOC 규정 위반으로 골리 마스크 도안을 수정했다. 하지만 베터가 IOC로부터 지적당한 건 '자유의 여신상' 그림이 아니었다. "We the people"로 시작하는 미국 헌법 문구를 새긴 것이다. IOC는 이 문구가 "특정 집단을 '선전(propaganda)'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골리 마스크 턱 쪽에 그려진 오륜마크도 뺐다.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과 킷 맥도널 IOC 스포츠국장은 이날 평창조직위와의 공동 일일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유니폼 등 기술적인 규정은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선수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정확한 설명을 피했다.

IOC는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정치적 표현(political statement)'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IOC가 들이대는 잣대에는 일관성이 없다.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에서 일본 체조 대표팀이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가 디자인된 유니폼을 입고 메달을 땄지만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반면 당시 대회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 박종우가 3~4위전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따낸 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었을 때는 '동메달 박탈'까지 검토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강릉=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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