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시장 다시 활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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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사채시장이 최근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정우개발과 고려개발의 부도사건이후 침체일로를 걷던 사채시장이 정부당국의 강력한 통화환수책으로 은행과 단자등이 신규대출을 중단하자 기업의 급전수요가 사채시장으로 몰리고 있고, 이에 따라 사채금리도 크게 치솟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년 초까지만 해도 사채시장은 중소기업이 물품대전으로 받은 진성어음 할인만 간간이 이루어질 뿐 거래가 뜸했었으나 지난4월초부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대기업까지도 사채시장을 찾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
손꼽히는 대형업체인 H사가 운영자금조달을 위해 지난달 하순 수십억원규모의 유통어음을 명동사채시장에 돌려 자금을 끌어간 것으로 알려졌고 일부 제약회사들이 발행한 유통어음도 적잖게 사채시장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4년째 명동에서 사채중개업을 해온 모씨는 『대기업의 유통어음이 사채시장에 나타난 것은 정우개발 부도사건이후 처음』이라며 시중자금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새마을 비리사건등의 파급을 우려한 큰 전주들은 대출에 신중을 기해 사채금리는 크게 치솟고 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월1.3∼1.4%였던 A급 상업어음(진성어음)의 할인율이 최근 들어 1.7∼1.8%까지 높아졌고 한달 미만짜리의 경우에는 월2%까지도 거래되고 있다. 비상장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발행한 B급어음은 할인율이 월2∼2.5%지만 A급어음 할인마저 어려운 실정이어서 B, C급어음은 거의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 사채업자는 전했다.
이처럼 사채시장으로 자금수요가 크게 몰리고 있는 것은 은행이 신규대출을 사실상 끊었기 때문.
특히 올 들어서만도 1조3천억원규모의 통안증권인수로 대출재원이 바닥상태인 단자사들도 신규대출은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자사들이 기존 거래기업의 급전수요를 막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끌어온 타인대(한도초과당좌대월) 규모만도 7천억원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연리19%의 타인대금리를 보전하기 위해 표면금리 12%를 5∼6%씩 웃도는 17∼18%선에서 「꺾기」가 성행하고 있다.
「사상최악」으로 표현되는 최근의 시중자금사정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련업계는 전망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사채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게될 것이 분명하다. <배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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