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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촬영 제의받자···北인사들, 김여정에 귓속말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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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접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접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北 김여정이 南에서 보낸 56시간…말 아끼며 실세 존재감 어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지난 9일 특사 자격으로 방남해 모두 약 56시간을 머물며 문재인 대통령과 네 번 만났다. 김여정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정부 고위급 인사들을 두루 만난 뒤 11일 밤 전용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방남 기간 동안 김여정은 가급적 말을 아끼면서도 정권 실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10일 청와대 접견과 오찬이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을 접견하며 "내가 특사입니다"라고 발언했다. 자신이 대남 특사 자격으로 왔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그 전까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김여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뜻”이라며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에게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는 발언도 했다.

 [올림픽] 청와대 방목록 작성한 북한 김영남과 김여정   (서울=연합뉴스)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10일 방명록에 남긴 문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39;통일 지향의 단합과 확신의 노력을 기울려 나감이 민족의 념원이다&#39;.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39;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례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39; 라고 작성했다. 2018.2.10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kjhpress@yna.co.kr/2018-02-10 16:25:21/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올림픽] 청와대 방목록 작성한 북한 김영남과 김여정 (서울=연합뉴스)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10일 방명록에 남긴 문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39;통일 지향의 단합과 확신의 노력을 기울려 나감이 민족의 념원이다&#39;.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39;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례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39; 라고 작성했다. 2018.2.10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kjhpress@yna.co.kr/2018-02-10 16:25:21/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접견 후 오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전날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의 남북 공동 입장부터 음식ㆍ개마고원ㆍ문익점 등 다양한 남북 공통의 화제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개막식 소감을 묻자 김여정은 “다 마음에 든다”며 “특히 우리 단일팀이 등장할 때가 좋았다”고 화답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취미인 트레킹을 화제로 올리며 북한의 개마고원 이야기를 꺼냈다. 문 대통령은 “젊었을 때 개마고원에서 한두달 지내는 게 꿈이었다. 집에 개마고원 사진도 걸어놨다”며 “마음만 먹으면 말도 문화도 같기 때문에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김여정은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오기가 힘드니 안타깝다”며 “북남 수뇌부의 의지가 있다면 분단 세월이 아쉽지만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20180210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20180210 /청와대사진기자단

함경도의 식해와 충남 천안의 호두과자 등 음식도 인기 화제였다. 문 대통령은 이 호두과자를 천안 명물이라고 소개하자 김영남은 “조선민족 특유의 맛이 있다”고 답했다. 김영남이 식해 얘기를 꺼내자 문 대통령도 “저는 매일 식해를 먹고 있다”며 “(부모님의 고향인) 함경도는 김치보다 식해를 더 좋아한다”고 화답했다.

김영남도 “역사를 더듬어 보면 문씨 집안에서 애국자를 많이 배출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갖고 들어와 인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고 덕담을 건넸다. 김영남은 이어 “문익환 목사도 같은 문씨인가”라고 물었고, 문 대통령도 “그렇다. 그 동생 분인 문동환 목사를 지난해 뵈었다”고 답했다. 남북 언어 차이와 관련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오징어와 낙지가 반대”라고 말하자 김여정은 “그것부터 통일해야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밤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1차전 남북단일팀 대 스위스 경기 응원을 마친 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과 함께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밤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1차전 남북단일팀 대 스위스 경기 응원을 마친 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과 함께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그러나 김여정은 그 이외의 자리에선 되도록 발언을 자제했다. 청와대 일정 후 강릉 스카이베이 호텔로 이동해 조명균 장관이 주재한 만찬에선 “서울이 낯설지가 않다” “(개막식에서) 별로 춥지는 않았다”고 말한 정도다. 만찬 후엔 곧바로 강릉 관동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이동해 북한 응원단 뒷줄에 문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경기를 관람했다. 김여정은 11일 서울 숙소인 워커힐호텔에서 이낙연 총리가 주재하는 오찬에 참석했는데, 여기에서도 별다른 발언은 없었다. 오찬에 참석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통화에서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김여정 특사의 목소리도 못 들었을 정도로 말을 아꼈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이 “오빠 뒤에 서있는 사진을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실제 만나니 키가 크시군요”라고 하자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북한 고위급대표단과의 오찬에서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건배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북한 고위급대표단과의 오찬에서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건배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연합뉴스]

오찬때 남측이 기념촬영을 제의하자 북측 인사들은 김여정에게 가서 귓속말로 보고를 한 뒤 그의 허락이 떨어진 뒤에야 움직였다고 한다.

김여정의 일정은 출발 직전까지 빡빡했다. 임종석 비서실장 주재로 5시20분부터 서울 중구 반얀트리호텔에서 만찬을 한 뒤, 7시부터는 인근 국립극장에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하며 문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는 인천국제공항에 대기 중이던 김정은 위원장의 전용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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