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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무너진 바벨탑, 수학을 알았더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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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수학 활용 능력

수학 활용 능력

수학자의 공부
오카 기요시 지음
정회성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수포자’도 즐기는 수학의 매력 #수학 없이는 예술·과학도 없어 #이성과 감성이 통합되는 세상 #이제 ‘문과라서’는 핑계 못 돼

문과생을 위한 이과 센스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류두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미술관에 간 수학자
이광연 지음, 어바웃어북

수학으로 만나는 세계
알렉스 벨로스·에드먼드 해리스 지음
이송찬 옮김, 이김

수학 활용 능력을 갖추면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학창시절의 수학 능력이 소득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하지만 누구나 수학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학과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학을 공부하다 사회로 진출한 다음에는 ‘수포자’가 되기 일쑤이다.

최근 출간된 『수학자의 공부』, 『문과생을 위한 이과 센스』, 『미술관에 간 수학자』, 『수학으로 만나는 세계』, 네 권은 우리 삶 속 수학의 의미를 묻는다. ‘수포자’와 수학 매니아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다. 특히 『문과생을 위한 이과 센스』의 부제인 ‘수학을 너무 일찍 포기한 당신에게’는 ‘수포자’에게 한 번 더 수학의 세계에 입문해 볼 것을 촉구한다.

『수학자의 공부』의 저자인 오카 기요시(岡潔, 1901~1978)는 일본을 대표하는 수학자다. ‘층 이론(sheaf theory)’의 개척자다. 그는 중학교 입시에 실패한 평범한 아이였는데 특히 수학에 자신이 없었다. 문제 풀이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가장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먼저 푸는 버릇 때문에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는 손도 안 대 시험을 망쳤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도 얼마든지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수학에 몰입했다. 몰입은 환희와 명성을 그에게 안겨줬다.

1963년 일본어판이 나온 이 책은 오카 기요시의 학문론·교육론·인생론을 담고 있다. 수학을 인간의 학문으로 이해하는 저자는 “인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정서’다. 수학은 정서를 지성이라는 문자판에 표현해내는 학문적 예술의 일종이다”라고 말한다.

브뢰헬이 그린 ‘바벨탑’. 바벨탑 붕괴 원인은 수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사진 구글 아트 프로젝트]

브뢰헬이 그린 ‘바벨탑’. 바벨탑 붕괴 원인은 수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사진 구글 아트 프로젝트]

반면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이과 교양 안내서를 표방하는 『문과생을 위한 이과 센스』가 중시하는 것은 ‘논리’다. 논리적 사고는 저자 다케우치 가오루가 말하는 ‘이과 센스’의 핵심이다. 저자는 ‘저는 문과라서···’라는 핑계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논리’를 깨우는 것은 문과 출신들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에서는 문과·이과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며 문과·이과 차이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근대화에 나선 일본이 서양 교육체계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문과·이과 사이에 장벽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넘어서야 하는 소위 ‘통섭의 시대’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독서가 필요하다. 편중된 독서는 편식 못지않게 나쁘다. 이과형 독자에게는 문사철(文史哲)이, 문과형 독자에게는 수학을 다룬 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술관에 간 수학자』와 『수학으로 만나는 세계』는 독자들을 그림을 통해 수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미술관에 간 수학자』는 세계 명화 뒤에 숨어 있는 원근법·황금비·무한·프랙털·거듭제곱 같은 수학의 원리와 공식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산술과 기하를 모르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고 말한 기원전 4세기 화가 팜필루스 이래 수학과 미술의 만남은 놀라운 상생의 성과물을 낳았다. 경제학의 여러 주요 분과들과 마찬가지로 알고 보니 미술 또한 ‘응용수학’이었던 것이다. 저자인 한서대 수학과 이광연 교수는 “모래로 탑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게 탑을 쌓을 수 있다”며 바벨탑 붕괴 원인을 수학을 무시한 데서 찾는다.

『수학으로 만나는 세계』는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까지 위대한 수학자들의 발견을 패턴과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1부는 색연필로 칠하는 컬러링북 형식을 취하고 있다. 2부 크리에이팅에서는 독자들이 직접 자신만의 패턴과 이미지를 창조해보는 기회를 선사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수학에 대해서는 상반된 전망이 있다. ‘수학은 지금보다도 더 중요해진다’ ‘수학을 알면 살고 모르면 죽는다’는 식의 주장이 있다. 반면 ‘AI 시대에서는 수학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가 직업 안정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라는 예측도 있다. 앞으로 수학과 세상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건 확실한 것도 있다. 수학은 창의성에 필요한 직관과 영감의 원천이라는 것, 어떤 이들은 수학의 세계에서 황홀경을 맛본다는 것이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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