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한류' 홈런 … 작은 패배 큰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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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서울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2만여 명의 시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팀을 응원하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야구는 결승 문턱에서 분루를 삼켰다. 잠실=김태성 기자

6연승은 끝났다. 1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에 졌다. 0-6으로 점수 차는 컸다. 김인식 한국대표팀 감독은 "일곱 경기에서 단 한 번 졌지만 진 것은 진 것"이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기묘한 대진 방식에 희생됐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한국 야구는 작은 패배를 당했지만 WBC를 통해 '큰 승리'를 얻었다. 야구는 새로운 한류(韓流)였다.

한국 야구가 세계에 알린 것은 '야구'가 아니라 한민족의 혼, 대한민국의 정서, 우리의 문화였다. 일본 도쿄에서, 미국 애너하임에서, 그리고 샌디에이고에서 한국 야구는 '코리아'를 세계에 선보이는 거울이었다. 야구 관계자뿐 아니라 일본, 미국 그리고 세계가 한국을 다시 보았고, 한국인과 그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번 대회 슬로건 'Baseball spoken here(야구가 공용어입니다)'처럼 WBC의 공용어는 야구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독특한 언어, 든든하고 견고한 야구 스타일은 한 관중의 팻말처럼 WBC를 'World's Best Corea(최강 한국)'로 알리기에 충분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야구를 받아들였지만 한국은 특유의 색깔로 재생산해냈다. 때로는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상대를 밀어붙일 줄 알았고 (미국전 이승엽의 초구 홈런), 때로는 상대의 힘을 이용해 기다렸다 받아칠 줄도 알았다(미국전 이승엽의 고의 볼넷 뒤 최희섭의 3점 홈런). 또 무턱대고 상대를 향해 달려들기보다는 때를 기다리다가 한순간에 승부를 걸 줄 알았다(한.일전 이승엽의 8회 홈런, 이종범의 8회 결승타). 이'코리안 스타일'에 세계야구의 열강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변화구에 능한 언더핸드 정대현과 김병현, 그리고 물샐틈없이 타구를 잡아내는 유격수 박진만을 보고 미국의 한 스카우트는 "한국사람은 어려서부터 젓가락을 사용해 손놀림이 좋다. 그래서 변화구도 잘 던지고 내야수 글러브질이 민첩하다"며 한국의 젓가락 문화를 아는 척했다.

교민들의 열성적인 응원도 바로 '메이드인 코리아'였다. 응원구호는 늘 "대~한민국"으로 시작했고, "대~한민국"으로 끝났다. 일본에서는 200명의 질서정연한 원정응원이 도쿄돔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자유분방하면서도 하나 되는 응원의 물결이 춤을 췄다. 그 코드는 바로 우리만의 '신바람' 이었다.

한국 야구의 힘에 일본의 심장 도쿄돔이 들썩거렸고, 일본의 왕세자가 놀랐다. 통쾌한 돌풍은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계속돼 최대의 화제는 한국이었다. 미국 언론들이 한국 야구와 김인식 감독의 '휴먼 야구'에 주목했고, 그 잠재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샌디에이고=이태일 기자 <pinetar@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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