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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충국' 한반도와 미국의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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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반도는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지정학적 완충국이다. 평화유지를 위한 강대국 간 공통의 이해 형성이 필수적인 지역이다. 1904년 러일전쟁 전야의 외교는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당시는 러시아가 1900년부터 의화단의 난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만주에 대군을 투입해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러일전쟁 개전 이전 수년간 몇 차례 조선 중립화를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러.일 양국은 대한제국 중립화 제의의 배경에는 적국의 영향력이 숨어 있다고 의심했고, 대한제국 자체가 중립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중립화를 반대했다.

그러던 중 1903년 5월 러시아 내 강경파가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 점령을 주도한다. 일본은 이 사건을 한반도 북부에 세력권을 형성하려는 러시아의 기도로 보고 최후 협상에 들어간다. 6개월 가까이 계속된 협상은 한마디로 세력권 설정을 둘러싼 각축이었다. 러시아는 북위 39도 선 이북의 한반도 북부지역을 중립지대로 설치하자고 주장한 데 비해 일본은 한만(韓滿) 국경인 압록강 양안에 50㎞씩 비무장지대를 설치하자고 했다. 두 나라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고, 결국 다음해 2월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이후 일본은 조선을 강점하지만 해양국가로서 누리는 천혜의 방어환경을 버린 뒤 만주사변.중일전쟁 등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히려 조선의 독립과 중립화를 인정해준 것보다 못한 상황을 맞다가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 과정도 중요한 참고가 된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은 한.미 양국 군은 여세를 몰아 평양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당장 국경을 사이에 두고 미군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49년 여름 국공(國共)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은 50년 봄까지만 해도 대만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 개전과 함께 미 제7함대가 대만해협에 투입된 데 이어, 이제 얼마 전까지 국민당군을 지원하던 적국 미국과 직접 대치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미국과의 3차 세계대전을 원치 않던 소련은 공군력을 지원해줄 수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마오쩌둥(毛澤東)은 미국을 패퇴시켜 중국에 대한 위협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해 한국전 개입을 주도했던 것이다.

이 미.중전쟁의 경험을 두고 키신저 등 전략가들은 바로 완충국이라는 한반도의 특성을 무시한 나머지 미국이 전략 입안에서 혼란을 겪은 사례로 지적했다. 차라리 평양-원산 선 정도에서 휴전을 끌어냈으면, 북한을 취약한 완충국으로 남겨 한.미 양국의 부담을 줄였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념의 과잉'으로 한.미동맹을 금가게 해온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동아시아 주둔 미군은 상호불신이 만연한 지역에서 분쟁 요인을 억제하는 평화유지군 역할도 한다는 이유로 각국의 환영을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이 지나치게 야심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주장할 경우, 미국은 지역정세의 안정자가 아니라 압도자로서 인식돼 경계심을 유발하게 된다. 미국은 한반도 전략에서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한 '전략적 자제'의 미덕도 보여야 동아시아 국가 모두의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김승영 영국 애버딘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