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킁킁' 냄새 맡더니 전방주시…'흰개미 잡는' 탐지견의 활약상

중앙일보

입력

7일 오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안의 동장대(연무대). 조선 시대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이곳 주변을 잉글리시 스프링어 스패니얼 품종의 개 3마리가 맴돌기 시작했다. 에버랜드가 위탁·운영하는 에스원 탐지견센터 소속 흰개미 탐지견 가람(6·암컷)과 마루(6·암컷), 아라(5·암컷)다.

흰개미 탐지견들이 수원 화성 연무대 주변을 돌며 흰개미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흰개미는 나무 안 쪽에 살아서 육안으로 피해를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개들은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흰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 향을 구분해 낸다.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흰개미 탐지견들이 수원 화성 연무대 주변을 돌며 흰개미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흰개미는 나무 안 쪽에 살아서 육안으로 피해를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개들은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흰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 향을 구분해 낸다.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나무기둥 주변에서 '킁킁' 냄새를 맡던 이들은 곧 멈춰섰다. 담당 핸들러(handler·개 훈련사)가 목줄을 끌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흰개미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신호다. 박병배(37) 핸들러는 "개는 인간보다 후각 능력이 100배나 뛰어나 흰개미가 있던 흔적까지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흰개미탐지견 가람·마루·아라 올해 첫 활동 #11월까지 9개월간 전국 120개 문화재 보호 나서 #흰개미는 목재 문화재 갉아먹는 해충 #나무 안에서 생활에 쉽게 찾을 수 없어 #후각 뛰어난 개를 활용해 찾아내 방재작업 #에스원탐지견센터, 올해 6마리까지 늘릴 예정 #

흰개미 박멸을 위한 첫 활동이 경기도 일대에서 시작됐다. 에스원 탐지견센터와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날부터 흰개미 탐지견과 함께 오는 11월까지 9개월간 전국 120여개 문화재를 오가며 흰개미 탐지에 나선다.
탐지 대상은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의 약 30%(3900여 곳)를 차지하는 목조문화재다.
이날은 수원 화성 팔달문(보물 402호)과 화서문(보물 403호), 동장대에서 탐지작업이 이뤄졌다.

에버랜드가 위탁운영하는 에스원 탐지견센터 소속 흰개미탐지견 아라. 가람, 마루(왼쪽부터)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에버랜드가 위탁운영하는 에스원 탐지견센터 소속 흰개미탐지견 아라. 가람, 마루(왼쪽부터)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흰개미는 원래 열대·아열대 지방에 사는 곤충이다. 1920년대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 처음 관찰되더니 1980년대엔 목재 문화재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흰개미가 나무를 갉아먹는 다는 것이다. 크기가 작은데다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땅속에서 기둥을 따라 이동하면서 나무 속을 훼손해 맨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 붕괴 등 피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이에 문화재청과 탐지견센터는 지난 2007년부터 협약을 맺고 문화재 흰개미 탐사에 후각이 발달한 개를 투입하게 됐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흰개미 피해를 막기 위해 탐지견을 활용한다.

왼쪽부터 흰개미탐지견 가람, 마루, 아라와 담당 핸들러 박병배, 심상원, 이호진씨. 수원=최모란 기자

왼쪽부터 흰개미탐지견 가람, 마루, 아라와 담당 핸들러 박병배, 심상원, 이호진씨. 수원=최모란 기자

탐지견들은 문화재 곳곳을 살펴보다 흰개미가 내뿜는 페로몬 냄새를 맡으면 자리를 떠나지 않는 방법으로 핸들러에게 알린다.
그러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흰개미 서식 여부를 확인한 뒤 방제 작업을 벌인다.
조창욱(37)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은 "흰개미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4~5월이지만 그때는 짝짓기 등으로 흰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 냄새가 너무 강해 탐지견들이 혼동할 수 있어서 2월부터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흰개미 탐지견들이 수원 화성 연무대 주변을 돌며 흰개미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흰개미는 나무 안 쪽에 살아서 육안으로 피해를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개들은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흰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 향을 구분해 낸다.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흰개미 탐지견들이 수원 화성 연무대 주변을 돌며 흰개미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흰개미는 나무 안 쪽에 살아서 육안으로 피해를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개들은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흰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 향을 구분해 낸다.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흰개미 탐지견은 에스원 탐지견센터의가람·마루·아라 등 3마리와 후보견 1마리 등 4마리가 유일하다. 모두 잉글리시 스프링어 스패니얼 품종이다.
박 핸들러는 "품종 제한은 없지만, 흰개미 탐지견이 되려면 활동적이고 호기심과 집중력이 뛰어나면서도 체력이 좋아야 한다"며 "리트리버종이나 삽살개 등 다른 품종의 개들을 대상으로도 훈련을 해봤지만 잉글리시 스프링어 스패니얼종이 흰개미 탐지견에 가장 적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두 탐지견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려 2년의 훈련 기간을 거친다.
핸들러들은 먼저 개들이 테니스공을 좋아하도록 훈련한다. 테니스공이 고생한 탐지견들에게 '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심상원 핸들러는 "스패니얼 품종의 개들이 워낙 활발한 성격이라 먹이보다는 테니스공을 상으로 줄 때 효과가 더 좋았다"고 했다.

흰개미 탐지견들이 수원 화성 연무대 주변을 돌며 흰개미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흰개미는 나무 안 쪽에 살아서 육안으로 피해를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개들은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흰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 향을 구분해 낸다.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흰개미 탐지견들이 수원 화성 연무대 주변을 돌며 흰개미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흰개미는 나무 안 쪽에 살아서 육안으로 피해를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개들은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흰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 향을 구분해 낸다. [사진 에스원탐지견센터]

개들이 테니스공과 익숙해지면 이번엔 다른 개미와 흰개미의 페로몬 냄새를 구별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문화재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인 만큼 함부로 짖지 않고 사나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예절도 가르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어엿한 흰개미 탐지견이 된다. 이들은 매년 문화재 100여 곳을 돌며 흰개미가 있는지 찾는다.
10년 정도 활동을 한 뒤엔 은퇴해 자원봉사자 가정 등에서 여생을 보낸다. 지금까지 탐지견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개도 우리·보람·보배 등 3마리나 된다
박 핸들러는 "탐지견들이 탐지기보다 흰개미 흔적을 훨씬 더 빨리 찾아낸다"며 "올해 안에 탐지견 수를 6마리까지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