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되풀이 하는 북한 예술단 방남 경로 수정, 무슨 사연 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판문점(지난달 15일, 실무접촉)→경의선(1월 23일, 전통문)→만경봉 92호(2월 4일, 전통문).

북한 예술단 선발대 23명과 악기, 공연장비 등을 실은 북측 차량이 경의선 육로를 통해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서고 있다. [사 진 공동취재단]

북한 예술단 선발대 23명과 악기, 공연장비 등을 실은 북측 차량이 경의선 육로를 통해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서고 있다. [사 진 공동취재단]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강릉(8일)과 서울(11일)에서 공연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남 경로가 도착 전날까지도 계속 바뀌면서 혼선을 빚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5일 “북측이 4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6일 예술단 본진이 만경봉 92호를 이용해 방남하고, 예술단의 숙식장소로 이용할 예정임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백 대변인은 “강릉에서 공연하는 기간에 숙식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알려왔다”고 덧붙였다. 5일 오전 예술단 선발대 23명이 악기와 음향, 조명 장비 등을 싣고 경의선 도로로 왔지만, 현송월 단장 등 본진 120여명은 9700t급 만경봉 92호를 이용해 동해 바닷길로 온다는 것이다. 만경봉 92호는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을 맞아 조총련 기업인들이 지원해 건조한 여객선이다.

북한은 앞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의 방남 경로도 경의선 육로에서 원산 갈마비행장~양양 국제공항 루트로 바꾼 적이 있다. 마식령 스키장에 훈련을 갔던 남측 대표단이 귀환하는 아시아나 전세기 편에 동승한 것이다. 그러나 당초 판문점으로 오겠다던 예술단은 두 차례나 경로를 수정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한번 결정한 사항을 바꾸려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까지 보고가 돼야 한다”며 “그래서 좀처럼 수정하는 일이 없는데 이번에는 워낙 촉박하게 준비하다 보니 잦은 계획변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두 차례나 계획 수정을 한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특히 5일 오후부터 동해는 눈과 비가 오고, 파고가 2~6m로 여객선 항해에 궂은 날씨다. 전직 통일부 당국자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만경봉 92호를 이용해 왔던 응원단들이 멀미로 상당히 고생했다”며 “이동 거리나, 경로를 고려하면 경의선 육로가 훨씬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만경봉 92호를 들고 나온 건 정부의 대북제재의 벽을 뚫으려는 노림수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부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북한 선박의 한국 영해 항행을 금지했고, 지난 2016년 12월에는 북한에 갔던 선박의 국내 입항을 1년간 금지하는 대북 독자제재를 시행했다. 하지만 정부는 만경봉 92호에 대해 대북제재를 유예할 방침이다. 백 대변인은 “대북제재와 유엔 결의, 미국의 제재와 관련해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토하겠다”면서도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예외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우리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만경봉호 입항을 허용할 것으로 보고, 이참에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