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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의향서 작성 …‘사망 임박’ 담당의사 판단 받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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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14면

연명의료결정제도 오늘부터 시행

논란 속에 연명의료결정제도가 4일부터 시행된다. 회복 가능성 없는 환자가 임종 시기를 늦추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받거나 인공호흡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이하 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받을지 등에 대한 의사를 미리 남겨놓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법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중증 환자뿐 아니라 건강한 일반인도 대상으로 한다.

병원 등 49곳 등록기관 지정 #환자 의사표현 힘든 상태라면 #가족 진술과 의사의 확인 필요 #“의향서 없고 가족 연락 두절 땐 #기약 없는 심폐소생술 해야할 판”

사전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미리 작성해 놓을 수 있다. 다만 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유효하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주요 거점 보건소와 대학병원 등 49곳을 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했다. 작성된 사전의향서와 의료계획서는 연명의료정보포털(www.l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 언제든 그 내용을 바꾸거나 철회할 수 있다. 하지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어도, 실제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한 명에 의해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아 사망이 임박한 환자(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단을 받아야 한다.

의료계획서나 사전의향서가 없고 환자가 의사표현이 힘든 상태라면 평소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생각을 가족 중 두 명 이상이 동일하게 진술하고, 그 내용을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해 줘야 한다. 만약 위의 모든 경우가 불가능하다면, 환자가족 전원이 합의해 환자를 위해 결정을 내리고, 이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해야 한다.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친권자가 그 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법 시행 직전까지 의료계 등의 반발이 이어졌다. 연명의료결정법 내용이 복잡하고 방대한 것은 물론, 임종과정이란 급박한 순간에 지키기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게 대표적인 불만이다. 익명을 원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나 그 보호자에게 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왜 죽을 사람 취급하냐’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죽음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법을 거기에 끼워 맞춘 듯한 부분이 많아 현장에선 당분간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300여 명의 말기·임종기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연명의료 시범사업에서도 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이는 18명(6%)에 그쳤다. 보건복지부 연명의료 시범사업에서도 8300여명의 사망자 중 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이는 107명이었다. 의식이 흐린 환자에게 ‘곧 임종할 것 같다. 치료를 원하는지’ 등의 진술을 받아 녹취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여기에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담당 의사는 물론 해당 분야 전문의 한 명이 함께 판단하도록 해 중소규모 병원에서는 법을 지키기도 어렵다.

법이 되레 연명의료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수흠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은 성명서를 통해 “사전의향서를 받아놓지 못했거나 직계가족 모두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혹은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할 경우 의료진은 기약 없는 심폐소생술을 해야만 처벌을 피할 수 있다”며 “현장 의료진은 법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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