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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과 삼재풀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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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29면

삶과 믿음

여러 날 지속되던 강추위에 온몸을 웅크리고 지냈는데, 어느덧 입춘이 다가왔다. 봄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든 것이다. 신문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소식이 풍성하다. 성공적으로 잘 치러야 될 텐데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나도 기도의 정성을 보태야지 하는 마음으로 입춘첩을 쓰기로 했다. 내 방송을 듣는 분들에게도 경품으로 나눌 양으로 여러 장을 썼다. 침향을 하나 사룬 후 모처럼 벼루를 꺼내 먹을 갈아 적당히 자른 하얀 한지와 붉은 종이에다 멋을 내어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썼다. 봄이 와서 큰 행운과 기쁨이 깃들기 바란다는 뜻이다. 온 방에 그윽한 묵향이 침향과 함께 어우러져 뭔가 영험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춘에는 절집마다 입춘첩을 돌리는 일 외에도 삼재풀이의 기도문화가 있다. 인생살이에서 겪는 세 가지 재앙의 소멸을 비는 기도다. 세 가지 재앙은 ‘가난’ ‘질병’ ‘전쟁’이다. 이 세 가지 재앙을 없애고 경제적 부와 건강,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 입춘에 하는 삼재풀이다. 불교에서는 세 가지 재앙(삼재)을 ‘불’ ‘물’ ‘바람’이라고 하여 좀 더 종교적인 설명을 한다. 불은 탐욕을 뜻하며, 물은 분노, 바람은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탐욕은 우리를 불태우고, 분노는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나락으로 침몰하게 하며, 어리석음은 거친 바람처럼 우리를 흔들어 미혹하게 한다.

“나무부처는 불을 건널 수 없고, 쇠부처는 용광로를 건널 수 없고, 흙부처는 물을 건널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탐진치가 가득한 부처가 아닐까? 불, 물, 바람이라는 재앙이 가득한 사바세계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건너야 할 것인가?

지구촌공생회를 결성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구호사업을 하시는 금산사조실 월주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류가 끊임없이 테러와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갈등하면서도 결국 멸망하지 않는 것은 자비와 사랑을 이웃에 베푸는 마음에 기인합니다. 수십억만 인류가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비심과 보살심, 보살행과 이타행을 실천한 덕분입니다” 삼재풀이는 결국 기도와 입춘첩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자비심을 가지고 실천할 때 가능하다는 일깨움을 주신 것이다.

이제 추위도 서서히 물러가고 수선화, 동백 등 봄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날 때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도 녹을 것이다. 지난번 한파가 몰아칠 때 숙소 보일러관이 얼어 온수가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때 신도님께 연락하여 헤어드라이기를 가져오게 해 끙끙대며 한 시간에 걸쳐 배수관을 녹여 온수가 나오게 한 일이 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종교인이라 그런지 늘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삼재풀이인 것 같다.

원영 스님
조계종에서 불교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저서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것들』. BBS 라디오 ‘좋은 아침, 원영입니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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