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구순 할머니의 마지막 후회 "제명까지 살걸, 아파, 아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21일 응급실에서 한 응급 환자를 돌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21일 응급실에서 한 응급 환자를 돌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한국은 한 해 평균 1만3000명가량의 아까운 목숨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 과정이 고통스럽고 남은 가족도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중앙일보·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한국자살예방협회는 자살의 문제점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기획을 시작한다. 제도 개선과 자살 예방 인프라 확충에 집중할 계획이다. 한 명이라도 마음을 돌리게 하는 ‘파파게노 효과’를 기대한다. 시리즈 1회로 남궁인 응급의학 전문의의 자살의 의학적 고통을 싣는다. 고통의 실태를 보여 주기 위해 다소 적나라한 표현을 그대로 담았다.

중앙일보·안실련·자살예방협 공동기획

응급의 남궁인이 겪은 자살 시도자

나는 무수한 죽음을 목격했다. 그만큼의 죽음을 앞둔 눈빛도 보았다. 대체로 그것들은 힘없이 감겨 있거나 초점 없이 풀려 있다. 어떤 감정도 전하지 못 하는 눈빛을 남기고 사람들은 그리 허무하게 죽는다. 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를 도려내는 눈빛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 날카롭고 서늘하고 섬뜩한 기분에 빠트리는 검은 동자다. 그것은 목격한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저주를 남긴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전문적으로 본다. 흐린 날은 많고, 맑은 날은 적다. 그 흔한 충수돌기염보다는 확실히 많다. 시내에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날, 하루에 열 명을 만난 적도 있다. 내가 지금도 잊지 못 하는 그녀는, 그날 일곱 번째 자살 시도자였다. 아무렇게나 뜯어진 약봉지와 도저히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독극물과 정성스럽게 쓰인 유서와 같이 온 사람들 사이로 그녀는 왔다.

 의식이 미약했다. 90세의 노환으로 쪼그라든 육신이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처음 나는 그녀가 노인성 질환이나 패혈증인 줄 알았다. 구순을 넘긴 사람들은 그런 것들로 쉽게 죽거나 의식을 잃어버리니까. 하지만 그녀와 같이 온 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수북한 약봉지였다. 그것들은 아무렇게나 찢겨 한 알도 남지 않았다. 보호자는 그녀가 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해 약을 많이 받아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방금 그녀의 방에 들어가니 약이 전부 빈 봉지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관련기사

"할머니. 할머니. 이걸 다 드셨나요?"

그녀는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너무 많아요. 목숨을 끊으려고 하셨나요?"

 그녀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숨길 이유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정도 양이면 곧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고 생사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었다. 고령을 감안하면 사망 쪽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나는 중환자 구역에 할머니를 눕혀 달라고 소리치곤, 같이 온 처방전을 노려보았다. 수면제 중에서도 나쁜 경과를 보이는 종류였다. 즉시 보호자를 불렀다.

"이 정도면 생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곧 상태가 악화하면서 바로 고비가 올 겁니다. 평소에 우울증이 있으셨나요?"

"너무 많이 살았으니 늘 죽겠다고 하셨어요. 마치 그게 소원이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노인이 흔히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로 약을 드실 줄은... 거동도 못 하는 몸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고요."

 흔하게 듣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굳은 결심으로 많은 양을 먹은 것은 드물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기력은 가끔 이런 방식으로 발현된다. 나는 중환자실을 예약하고 중심정맥관과 투석관을 포함한 모든 의학적 처치를 한 번에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실은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 뒤늦게 찾아올 죄책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병실에 어지럽게 연결된 수액줄. [중앙포토]

한 대학병원 병실에 어지럽게 연결된 수액줄. [중앙포토]

 그녀는 집중치료실에 혼자 누워 있었다. 그 앞으로 수액 더미와 각종 관이 날아왔다. 동맥혈 분석 결과는 심각한 산증이었다. 약 기운이 벌써 전신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녀는 괴로운 표정으로 호흡을 몰아쉬었다. 나는 굵은 관을 집어 들어 그녀의 신체에 마구 꽂았다. 그녀는 전신을 죄어드는 약 기운과 급박한 처치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던 그녀는 갑자기 전신을 떨며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항경련제, 아티반 2밀리 슈팅."

 그녀는 마른 전신을 비틀고 있었다. 수면제 음독으로 기인하는 최악의 경과였다. 전신의 전기 신호가 어긋나 경기를 시작하고, 심장까지 그 영향이 닿으면 환자는 불응성 부정맥으로 죽는다. 그녀는 계속 노쇠한 사지를 격렬히 떨었다. 어떻게 저런 기력이 남아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약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녀의 경련은 점차 멈추기 시작했다. 추가로 항경련제를 투여하고 투석을 준비했다. 그녀는 의식을 되찾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할머니, 또 경기할 수 있어요. 힘들 거예요. 솔직히 이번에는 못 돌아올 수도 있어요. 마지막일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할게요."

"나, 나는 언제 죽나요."

"안돼요.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해요. 살 수 있어요."

"아파. 아파.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아…."

"할머니. 기운을 내요."

"나는 죽고 싶었어요. 살 만큼 다 살았으니 이제 죽고 싶었어요. 사는 게 지겨웠어요. 그런데 너무 안 죽길래. 내가 직접, 그런데…. 너무 아파."

그녀는 이를 다시 악물었다. 눈알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아파. 후회스러워.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안 먹을걸,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제 명까지 살걸…. 나는 후회해요. 선생님. 미안…."

 그렇게 고통스러운 눈동자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노쇠한 안구가 죽음의 고통으로 날카롭게 덜덜 떨었다. 이윽고 그 눈동자는 한쪽으로 확 기울었다. 동시에 그녀는 혀를 빼물고 입가에 피를 뿌리며 사지를 떨었다. 두 번째 경기였다. 대사성 산증, 생체 신호가 어긋나는 인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목격하는 것이 죽음과 비견되는 고통이라는 것을 안다. 마치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떨리는 고개를 왼쪽으로 잡아 돌리고 피를 뿜는 혀를 원래 위치로 집어넣었다. 항경련제가 다시 들어갔다. 경기는 지속되다가 멈춰갔고, 대신 그녀의 심전도도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맥이 없는 심실 빈맥, 심정지였다. 심장이 멈춰 경기가 같이 멈춘 것이었다.

 의료진은 그녀에게 올라타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류가 그녀의 몸을 2분마다 관통했다. 그때마다 축 늘어진 몸은 벌떡거리며 요동쳤다. 가차 없는 손길을 받아내는 축 처진 육신을 보고, 나는 방금 들었던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의식이 없는 육신이지만 끔찍하게 고통스러워 보였다. 조금만 더 안락하게 살았다면, 기적처럼 우울해 하지 않았다면, 별안간 지금까지 잊지 못했던 한 눈빛이 떠올랐다. 기억 먼 곳에 치워두었던 두려움이 엄습했다.

 몇 년 전 보았던 젊은 사내였다. 그는 빙초산 한 병을 다 마시고 몸부림치다가 발견되어 실려 왔다. 받아든 병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냄새는 역겨울 정도로 시큼했다. 죽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면 입도 대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나는 그를 흔들어 대화를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식도와 위와 창자가 불타는 극도의 고통 탓이었다. 그 통증은 직접 겪지 않은 나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속이 쓰리다고 말하는 느낌이 실제 목숨을 잃을 정도라면 설명이 가능할까. 누군가가 당신의 장을 불로 녹이고 있다면 설명이 가능할까.

 그는 집중치료실에 혼자 누워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대신 기괴한 표정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자신의 가슴팍을 마구 긁고 두들기기 시작했다. 광인의 눈동자였다. 타고 있는 식도는 너무 깊어 만질 수 없었으나, 대신 무엇이라도 뜯어내 고통을 줄이려는 것 같았다. 손톱이 가슴의 살을 실제로 파내자, 우리는 그의 손아귀를 붙들었다. 대신 몸통이 들썩거렸고, 할퀸 자리에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것도 창자가 타는 고통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선물처럼, 혈관으로 전신 마취제를 투여했다.

"잠들어요. 고통이 끝날 겁니다."

 그는 거의 즉시 의식을 잃었고, 빙초산의 독성으로 곧 죽었다. 그러나 나는 그 미쳐버린 듯한 눈동자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된 주사와 죽음과, 악착같은 손아귀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내장이 녹아 없어지는 고통과 사방으로 움직이는 눈동자를.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쓰여진 문구. [연합뉴스]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쓰여진 문구. [연합뉴스]

 나는 기억을 불러놓으며 마지막까지 그녀를 살려내기 위한 처치를 했다. 그것은 곧 육신을 부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쇠약한 몸으로 약을 삼킨 노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부릅뜬 동자를 눈꺼풀로 덮었다. 이제 끝내 시체 한 구가 남았다. 움푹 꺼진 가슴이 남았다. 급하게 찔러댄 주사기의 구멍이 커다랗게 남았다. 이것이 그녀가 바란 결과였던가? 터무니없는 소원은 이제서야 이루어진 것일까?

 적어도 이 육체를 축복할 수 없었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소명 때문이 아니라, 끔찍한 눈빛과 인간을 말살하는 고통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후회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편안한 결과로 여긴다. 그리고 그를 얻기 위해 정신 나간 시도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인 고통을 목격하고 온전히 받아내는 사람이다. 그것은 인간의 육신을 철저히 파괴하고, 마지막 남은 정신도 짓밟아 버린다. 살육의 과정이다. 이것들이 여기 만연해 있다. 그 실체를 모른 채, 사람들은 기어코 그것을 지나가려 한다. 왜 내 앞에서 사람들은, 학살과도 같은 이 과정을 지나려 뛰어드는가. 죽고자 하는 열망은 이것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이던가.

 나는 이제 막 끝나버린 고통을 두고 고개를 돌렸다. 치료실을 나오자 무엇인가를 도려낼 것 같은 동자가 어른거렸다. 당분간 또 편히 잠들 수 없을 것이었다. 또 그 눈빛, 눈빛과 같이 잠들어야 했다. 이것도 사방을 떠돌던 그 광인의 눈동자와 같이 나를 따라다닐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세 명의 자살자가 더 왔다. 그녀는 그날 일곱 번째였다.

의사 남궁인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응급실에서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그린 책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를 냈으며, 최근 독서일기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를 출간하고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활자로 느껴지는 감정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