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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바지, 솜동복, 솜신을 착용해 열병식 준비를 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솜바지·솜동복·솜신을 착용하고 핫팩을 비비면서 열병식 준비에 참여하죠.”

북한 주민들 추위보다 훈련을 더 힘들어 해 #중앙기관·근로단체에서 음식을 장만해 제공 #제대한 학생들은 경력쌓기 위해 선호하는 편

북한 열병식에 제대한 뒤 대학생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 탈북민 최경호씨는 최저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평양에서 고생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북한이 열병식을 2월에 하는 것은 거의 드물었다. 북한은 열병식을 김일성 생일(4월 15일), 정권 수립일(9월 9일), 당 창건일(10월 10일)에 주로 했다. 최씨는 “추위보다는 훈련이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열병식에 동원되면 평소 식사보다 양질의 식사를 받지만 강추위에 야외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북한 군인들이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맞아 열병식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 군인들이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맞아 열병식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훈련 기간 동안 중앙기관·근로단체 등에 열병식 응원의 명목으로 돼지고기·떡 등을 들고 훈련장을 찾도록 지시한다. 평양시 산하 기관에서 근무했던 탈북민 이혜경씨는 “음식을 들고 갔더니 일부 대학생들이 ‘훈련이 너무 고되고 잠잘 시간이 부족해 먹는 것보다 푹 자고 싶다’고 말해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열병식은 군인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다. 열병식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대학생·일반주민들도 열병식 군중대회에 동원된다. 대학생들은 주로 제대한 학생들 가운데 건강상태·키 등을 기준으로 선발된다. 선발된 학생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 미림비행장 근처에서 합숙하며 훈련에 몰두한다. 이씨는 “일반 학생들은 훈련이 힘들어 열병식 참가를 기피하지만 제대한 학생들은 ‘경력’을 고려해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북한은 김씨 3부자가 열병식을 만족스러워하면 참가자들에게 공로 메달 등 국가훈장을 수여했다. 따라서 대학생 시절 훈장을 받은 것은 드문 일이고 훈장을 받으면 향후 취업·노동당 가입 등에 유리하기 때문에 제대한 학생들은 선호하는 편이다.

북한 주민들이 2017년 4월 15일 열병식에 참여해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 주민들이 2017년 4월 15일 열병식에 참여해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직장인들은 하루 일이 끝난 이후 열병식 군중대회 연습에 참여한다. 열병식 행사에서 빨강·파랑·노랑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꽃다발로 노동당 선전 문구를 만들고 환호하고 행진하기 위해서다. 평양방직공장에 근무했던 탈북민 박나경씨는 “퇴근해서 군중대회에 동원되는 기간에는 가사는 거의 엉망이 되며 만성 피로로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23일 노동당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4월 25일에서 2월 8일로 옮긴다고 보도했다. 4월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정했다. 북한은 48년 2월 8일 인민군을 창설했다가 78년부터 4월 25일로 옮겼다. 김일성이 32년 4월 25일 조직한 ‘반일인민유격대’를 정규군의 뿌리로 보고 변경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를 다시 원래대로 2월 8일로 옮긴 것이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이번 열병식은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의도이며 ‘김정은의 군대’로 만드는 첫 작업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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