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北에 일방 취소 두 번 당해도…통일부 "부담 돼서 그랬을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 한밤 취소, 송영무 발언 때문?…금강산 합동 공연 돌연 취소 왜  

금강산 남북합동문화행사와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사전점검 차 방북한 선발대가 지난 23일 금강산 문화회관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남북 합동문화행사 장소로 북한의 '금강산문화회관'이 적극 검토되며 공연 내용에 한국 대중가요(K-POP)가 포함되도록 남북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제공) 2018.1.26/뉴스1

금강산 남북합동문화행사와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사전점검 차 방북한 선발대가 지난 23일 금강산 문화회관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남북 합동문화행사 장소로 북한의 '금강산문화회관'이 적극 검토되며 공연 내용에 한국 대중가요(K-POP)가 포함되도록 남북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제공) 2018.1.26/뉴스1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9일 싱가포르에셔 열린 플러튼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9일 싱가포르에셔 열린 플러튼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북한이 지난 29일 밤 돌연 금강산 합동 공연을 취소하면서 내놓은 이유는 남측 언론에 대한 불만이었다. 북한은 우리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남한 측 언론들이 평창 올림픽과 관련해 북한이 취하고 있는 진정 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계속 확산시키고 있다"며 "북한 내부의 경축행사까지 시비에 나선 만큼 합의된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언급한 “내부 경축행사”는 2월8일 건군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전부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우리측 언론 보도도 불편했을 수 있지만 2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북한 정권은 지도상에서 지워질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북한이 발끈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북한이 금강산 남북 합동 행사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것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도 짧은 기간 내 준비하는데 주말을 다 반납하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북한도 금강산 지역에서 300명 이상 대규모 행사를 한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여러 부분들이 부담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시설이 낙후됐고, 평양 등지에서 북한 주민을 동원하는데 무리가 따랐을 거라는 분석이다. 합동문화행사는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을 민족의 경사라고 언급한 상황에서 그 전야제 성격인 금강산 문화행사를 언론 비판만 갖고 취소한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못 된다”며 “같은 날 알려진 송영무 장관의 발언에 대한 불만으로 취소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남측 언론에 책임 전가를 했으나 실제로는 북한 군부 등에서 송 장관의 발언에 불만을 강하게 표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송 장관의 이날 발언은 싱가포르에서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최한 다자안보회의 풀러턴 포럼 기조연설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도 “송 장관의 발언에 북한이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금강산 합동 문화행사와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사전점검을 위한 남측 선발대를 태운 버스가 23일 동해선 육로로 방북하고 있다. 12명의 선발대는 이날 오전 10시쯤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했다. [연합뉴스]

금강산 합동 문화행사와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사전점검을 위한 남측 선발대를 태운 버스가 23일 동해선 육로로 방북하고 있다. 12명의 선발대는 이날 오전 10시쯤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했다. [연합뉴스]

 여기에다 금강산 공연의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북한을 자극했을 거라는 시각도 나온다. 정부는 금강산 전력 공급이 부족해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경유 1만ℓ를 가져가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해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2397호가 정유제품의 대북 공급량을 연간 5만배럴(약 7945만ℓ)로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초이기 때문에 제한량을 넘지는 않지만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금강산 행사의 대북 제재 위반 논란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점에도 불만을 느꼈을 수 있다”며 “이번 취소 배경은 북한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북한은 반면 이르면 31일부터 1박2일로 진행 예정이었던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남북 스키 공동훈련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요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마식령 스키장을 선전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무진 교수는 “남측 선수들이 마식령 스키장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수령님의 업적에 남측도 감탄했다’는 식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마식령 합의는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북한 마식령스키장을 방문한 남측 선발대

지난 29일 북한 마식령스키장을 방문한 남측 선발대

북한의 한밤중 돌연 취소는 지난 19일,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의 방남을 하루 앞두고 취소한지 두 번째다. 당시 북한은 “방남 중지”라는 표현을 썼고, 통일부는 “취소가 아니다”라며 행사의 진행을 강조하는데 방점을 찍었다. 북한은 당시에 명확한 취소 사유를 밝히지도 않았고, 다음날인 20일 또 “21일부터 방남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었다. 그러나 이번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공연 관련 통보에서 북한은 “취소”라는 표현을 썼으며 정부 당국자도 30일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금강산 합동행사는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