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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국정원, 10억대 공작금 빼돌려 정치인 뒷조사…작전명 '데이비슨'·'연어'·'포청천'

중앙일보

입력

국가정보원. [사진 JTBC]

국가정보원. [사진 JTBC]

 ‘데이비슨’, ‘연어’, ‘포청천’. 이명박(MB)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김대중ㆍ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풍문을 수집하고 진보 정치인들을 불법적으로 사찰하면서 썼던 작전명이다. 작전 비용은 10억원대 국정원 대북공작금을 몰래 빼돌린 돈으로 댔다.

DJㆍ盧 뒷조사에 10억대 자금 유용

최근 검찰은 MB 국정원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와 관련된 해외 풍문을 수집ㆍ확인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한 정황을 포착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국정원 자금 200만달러(약 20억원)를 송금한 정황을 수사하던 중 대북공작금이 유용된 정황도 함께 얽혀나온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 국정원은 10억대 대북공작금을 들여 이들의 해외 풍문을 뒷조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 국정원은 10억대 대북공작금을 들여 이들의 해외 풍문을 뒷조사했다.

‘데이비슨’은 김 전 대통령의 영문 이름 약자 ‘DJ’의 ‘D’를 따서 만든 이름으로 김 전 대통령이 수조 원대 비자금을 해외 차명계좌에 보유하고 있다는 풍문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다. 당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한국 민주화 운동을 위해 미국 교포들이 모금한 수십억원을 착복했다”, “구조조정 명분으로 기업과 은행,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대규모 상납금을 받아 챙겼다”는 식의 주장이 퍼졌다. 국정원은 수억원 상당의 대북공작금을 들여 김 전 대통령이 미국에 숨긴 비자금을 찾아다녔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현동(62) 전 국세청장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그는 MB 정부 때인 2010년 8월부터 박근혜 정부 초인 2013년 3월까지 약 2년 7개월간 국세청장으로 재직했다. 검찰은 그가 국정원으로부터 빼돌린 대북 공작금 수천만원을 받고 김 전 대통령의 뒷조사를 도와준 것으로 보고 있다.

 ‘연어’ 프로젝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증언해줄 사람을 해외에서 국내로 송환한다는 뜻에서 지어졌다. 2010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미국 카지노의 전직 마케팅 디렉터에게 비자금 13억 원을 지폐로 박스에 담아 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시점과 맞물린다.이와 더불어 “노 전 대통령 방미 때 권양숙 여사가 현금 100만달러를 직접 전달했다”는 주장 등이 청와대 및 금융감독원에 제보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국정원은 뒷조사 끝에 헛소문이라 결론 내리고 자체 종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 특수활동비 의혹 수사 등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의 정치인 뒷조사가 이 전 대통령까지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 특수활동비 의혹 수사 등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의 정치인 뒷조사가 이 전 대통령까지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검찰에 따르면 해당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과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이다. 이들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 전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원 전 원장의 지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국장에게는 대북 공작금으로 호텔 스위트룸을 1년 가까이 빌려 원 전 원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 관계자는 “특정 정치인의 비리를 캐기 위해 해외에 떠도는 풍문을 확인하는 것은 국정원 업무범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전날 최 전 차장 및 김 전 국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포청천TF’로 진보 정치인 불법 사찰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MB 국정원의 정치공작 규모는 더 광범위하게 확대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지난 23일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대북 공작금을 빼돌려 한명숙 전 국무총리,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등 유력 야당 인사와 시민단체 인사, 전직 언론인 등 민간인을 상대로 한 불법 사찰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 의원에 따르면 이러한 정치공작은 ‘포청천’이라는 공작명으로 최 전 차장 지휘 아래 진행됐다. 외사 및 산업스파이를 담당하는 방첩국 직원들이 포청천TF에 소속돼 내사, 사이버, 미행감시 등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가 물러난 후에도 후임 김 전 차장에 의해 계속돼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대북공작금을 이용한 불법사찰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민병두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의 정치인 불법사찰 '포청천' 프로젝트를 폭로했다. [중앙포토]

민병두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의 정치인 불법사찰 '포청천' 프로젝트를 폭로했다. [중앙포토]

일각에서는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이미 Δ다스(DAS) 실소유 논란 Δ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등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야권 정치인의 불법사찰 의혹까지 더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윤호진ㆍ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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