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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m짜리 악기로 당당한 독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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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합주만 하던 피리로 독주회란 걸 열고, 게다가 민속악인 산조까지 건드리니.” 정재국(76) 피리 명인은 중요무형문화재 46호 보유자다. 그는 1973년 열었던 독주회 ‘정재국의 피리산조’를 “피리 독주회로는 당연히 최초였고, 당시엔 다른 국악기도 독주회라는 걸 별로 안 하던 때”라고 기억했다. 피리가 정악 합주에만 쓰이던 시절, 그는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의뢰하고 민속악에도 손을 대면서 피리를 독주 악기로 올려놨다.

피리 인생 60년 넘긴 정재국 명인 #무형문화재 피리정악 1호 #외길 인생 기념음반 발매

피리 명인 정재국의 연주 모습. 한뼘 짜리 악기 피리와 함께 보낸 세월이 60년을 넘겼다. [사진 예음]

피리 명인 정재국의 연주 모습. 한뼘 짜리 악기 피리와 함께 보낸 세월이 60년을 넘겼다. [사진 예음]

그는 1956년 처음 피리를 불었다. 학비를 전부 준다는 말에 멋모르고 들어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현재 국악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피리를 권했다. 피리 부는 소리가 유난히 굳세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피리 소리의 화려함을, 꿋꿋하고 힘있게 뻗어 나가는 소리가 매력임을 알았다. 그러니 합주에만 만족할 수는 없었다. “합주해도 내 소리로 전체를 다 삼키곤 했다. 또 내가 삐끗하면 전체가 무너진다는 게 힘든 일일 수도 있겠지만 희한하게 난 그 점에 자부심이 들더라. 그래서 합주할 때도 일부러 한 옥타브 높여서 불고 그랬다.”

어떡하든 피리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리가 한 구멍에서 세 음 이상이 나기 때문에 정교하게 불어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 마음속에 있는 음악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면 기술을 완벽하게 익혀놔야 한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연구를 했다. “원래 피리는 두 옥타브 정도밖에 못 냈다. 소리가 단조로워서 특히 현대 청중에게는 매력이 없었다. 근데 악기 꼭대기 쪽에 바늘구멍을 하나 뚫으니 옥타브가 넓어지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개량한 악기로 또 새로운 작품들을 불었다. 그는 “전통을 잘 이어야 하지만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며 “군대에서는 피리로 유행가도 불고 뭐든 다 했다”고 말했다. 지금껏 거쳐 간 제자 150명과 현재 제자 50명에게도 원리원칙과 더불어 “자유로이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인이 되라”고 가르친다.

그는 1998년엔 피리 정악이라는 분야를 새로 만들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20cm 정도 되는 악기와 평생을 지낸 그는 “하늘이 피리와 나를 맺어준 것 같다”고 했다. “우연히 하게 된 악기와 60년 이상 지낼 줄은 몰랐다. 특히 이처럼 한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정재국 명인은 이 긴 세월을 기념해 음반 ‘한뼘 피리로 60년 한길’을 냈다. 평조회상, 가즌회상과경풍년·상령산풀이를 수록해 독주 악기로서 피리 소리의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일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피리 소리에 자신이 있다. 실력이 조금이라도 덜해졌다 싶으면 그만두겠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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