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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보내온 11개의 택배상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8호 29면

공감 共感

지난 월요일, 책과 DVD가 가득 담긴 다양한 크기의 상자들이 새해 선물처럼 연구실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4층에 있는 연구실이기에 택배기사님과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11개 상자들을 운반했다. 영화 공부로 인생길을 따로 또 같이 나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품 상자였다. 부산에서부터 온 이 상자들을 받는 감회에 온몸과 맘이 절절해져서인지 무거운 상자를 움직여도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먼저 떠난 친구가 남긴 DVD 속 #옥상서 화초 키우는 철거민의 말 #“손만 가면 크는 … 배신 안 하는” #반려식물 보며 반려동행 생각

그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영화철학을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큰 형님 역할을 했었다. 이제 그의 유품은 영화공부를 함께 해온 친구들이 물리적으로 나누는 공동의 자산이 된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접한 그와의 물리적 이별은 이젠 기억의 저장고로 들어서는 중이다. 다양한 자기 정체성의 저장고는 기억의 집합이니, 기억을 불러내는 과정을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 그가 남긴 책과 DVD상자를 하나씩 천천히 열어가고 있다. 어떤 존재가 물리적으로 부재하더라도 기억해내는 해마세포가 작동하는 한 인생길의 반려는 다양하다는 깨우침이 퍼뜩 스치고 지나간다.

바로 이 공간에서 그가 오랫동안 공부해온 질 들뢰즈 철학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 이미지 접속에 관해 나누던 대화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4년전이었나? 작은 화분에 있던 2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산세베리아가 차고 넘칠 정도로 풍성해져 8배나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그랬더니 더 큰 화분에서 더 많은 물과 햇볕을 받은 산세베리아는 1미터 이상 자라면서 잎새도 넓어지며 지속적으로 옆으로 뿌리를 뻗어가는 중이다. 그러노라니 연구실에도 식물원 분위기가 생성되면서 공기청정효과라는 도움도 받는다. 집들이나 개업식 선물로도 사랑받는 산세베리아는 어디 가든 흔히 만나게 되는 식물이다. 그저 햇볕이 들어오는 곳에 놓고 물만 조금 주면 잘 자라난다. 이 식물은 물 담은 페트병이나 컵에 담가주기만 해도 잘 자라기에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도 좋은 대표적인 지구촌 공기정화식물이기도 하다. 이 식물은 NASA가 발표한 포름알데히드(새집증후군 주요인)제거 능력 27위로 뽑히기도 했다. 산세베리아의 변화 성장과정을 바라보면서, 이 식물이야말로 자유로운 관계맺기로써 들뢰즈식 리좀적 변이생성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라며 그와 함께 공감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미세먼지 상태가 ‘좋음’과 ‘나쁨’이란 정보로 날씨 변화와 함께 떠오르는 이곳에 머물며 산세베리아의 광합성작용 도움을 받아 숨고르기를 하며 천천히 그가 남겨준 상자들을 열어가는 것.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요즘 일상의 의미가 되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다큐멘터리 <공동정범>(2016, 김일란, 이혁상)을 보면서 연이은 참사에 묻혀 잊혀져 갈 수도 있는, 2009년 용산참사의 아픈 기억을 재생시키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식물과 관계를 둘러싼 연결 고리를 목격하게 된다.

<공동정범>은 이 사건을 다룬 <두 개의 문>(2011, 김일란, 홍지유)이 당시 수감중이던 이들의 진술을 담아내지 못해 후속작으로 제작된 것이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명,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참변의 공동 범죄자라는 죄명으로 감옥에 갔던 5인의 현재진행중인 일상과 기억을 생생하게 따라간다. 그때 그 시절 뉴스로는 접하기 불가능했던, 각자 내면의 숨결을 엿보게 해주는 이 기록은 그들이 저마다의 역할과 기억으로 불타오르는 남일당 망루 속에 갇혀있던 트라우마를 토로해낸다. 탈출하지 못해 죽은 이를 떠올리며 살아남은 죄책감을 토로하는 이도 있다. 특히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렵게 마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좌담회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기억과 분노로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토지와 건물을 대표적인 자본증식 수단으로 삼는 자본중심사회, 표현의 자유도 억압받는 사회에서 같은 피해자로서 연대하며 투쟁하다 감옥까지 간 그들의 아픈 기억이 모두에게 똑같은 것일 수도 없다. 나가서 터놓고 말할 데도 없는 아픈 기억으로 지쳐 가는 부조리한 세상살이, 하여 홀로 아픔을 새기던 한 철거민은 “소일거리로 화초나 좀 기르자” 며 옥상에서 작은 화분을 분갈이 하며 하나둘씩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손만 조금 대도 잘 살아 있다는 것. 그래서 하다 보니 너무 많아졌는데  그러면서 또 배신 안 하는 거. 내 손만 가면 잘 크는 거”라고 말하는 그의 사생활 공간. 반려동물과 함께 식물기르기 취미생활이 ‘반려식물’이란 말로 떠오르는 인생길에서 ‘반려동행’의 의미를 되새기에 해준다. 때론 억울한 생각에 세상에 나가 고래고래 소리치르고 싶지만 미친 사람 취급받을까 그렇게 못하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그의 식물사랑을 보면서 지구생태계에서 누리는 반려 동행의 파장이 더 넓고 깊게 다가온다.

유지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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