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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김애란·권여선·편혜영 소설이 한 권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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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떨림

제1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과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미당 수상작품집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사진 위)은 박상순(57) 시인의 수상작 이외에 최종심에 올랐던 시인 9명의 작품까지 모두 64편의 시가 실렸다. 황순원 수상작품집 『한정희와 나』(이상 다산책방·사진 아래) 역시 소설가 이기호(46)씨의 수상작과 자선(自選) 단편 한 편, 저작권 문제가 걸린 김숨의 단편을 뺀 최종심 진출작 8편까지 모두 10편이 실렸다.

미당·황순원문학상 작품집 출간

두 작품집 가운데 역시 황순원 쪽으로 손이 먼저 간다. 이기호씨 말고도 권여선·김경욱·편혜영·김애란 등 이미 단편소설 세공의 정점에 오른 작가들이 많이 포함됐다. 한창 자기 세계를 구축 중인 젊은 작가들인 기준영·박민정·최은영, 시장에서 검증된 『위저드 베이커리』의 작가 구병모까지 가세해 다채롭다.

한정희와 나

한정희와 나

이기호의 자선작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수상작 ‘한정희와 나’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작가 이씨를 연상시키는 소설가 주인공이 등장해 크고 작은 수난을 겪는 가운데 미묘한 윤리적 갈등상황에 처한다는 점에서다. 갈등의 핵심은 생판 남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한정희, 권순찬)에 대한 환대가 어느 선까지 가능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착한 사람들의 인내력, 공적인 예의준칙, 넓게는 사회의 시선이 복합작용하는 문제일 것이다. 가령 너무 힘들어지면 예의고 체면이고 선행을 포기하게 된다. 소설 속의 착한 사람들 역시 무한정 환대를 베푸는 데 연거푸 실패한다. 어쩌면 진정한 착한 사람들이 아니어서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의식했을 법한 양심의 뜨끔한 곳을 건드려 몰입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권여선의 ‘손톱’은 ‘역시 권여선!’ 하며 읽게 된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 다양하게 명명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생존 한계상황을 권씨처럼 아프게 후벼 파기는 힘들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포함됐던 김애란의 ‘가리는 손’은 전형적인 김애란표 소설. 작품의 메시지와 별개로, 생각과 관찰이 어우러진 김씨의 감칠맛 나는 문장들을 야금야금 파먹는 것만으로 배가 부른 소설이다.

미당수상작품집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되는 시선집이다. 수상자 박상순씨부터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지만, 함께 실린 김상혁·김안·김현·신용목·이근화·이민하·이영주·이제니·조연호, 9명의 시인 역시 사유와 감각의 첨단을 선보인다. 정신 차리고 읽어야 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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