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대북 인도지원 말 꺼내자 틸러슨·고노가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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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강경화 외교장관이 지난 16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반도 안보 및 안정에 관한 밴쿠버 외교장관 회의’에서 대북 인도지원 재개를 언급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일 언론, 밴쿠버 외교회의 전말 보도 #강 장관 “적절한 타이밍 찾고 있어” #외교부 “비공개 내용 언급 부적절”

산케이신문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밴쿠버 회의에서 강경화 장관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재개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며 “그러나 미국·영국·일본 외교장관이 일제히 ‘시기상조’라고 이견을 냈다”고 23일 보도했다.

이어 “그 결과 공동성명(미국·캐나다 공동의장 성명)에 대북 인도지원과 관련한 문구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북 압박을 강조하는 미국 등의 반대로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문에 따르면 강 장관은 한국의 대북 인도지원 방침을 설명한 뒤, “지원을 실시하기 위한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 등은 대북 제재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고 한다.

틸러슨 장관은 당시 개회 연설에서 “북한이 결정적인 비핵화 단계를 밟을 때까지 압박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믿을만한 협상을 위해 테이블에 나올 정도로 북한 정권의 행태에 더 큰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산케이는 “(회의에 참석한 20개국 외교장관들 중) 다수가 반대 의견에 동의했다”면서 “(강 장관의 의견에) 찬성의 뜻을 나타내고 대북 인도지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장관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강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가 북핵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타냈다. 그러나 고노 외상 등은 “(남북화해 분위기가) 북한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대북 대화를 중시하는 공동의장국 캐나다 주도로 공동성명에 “외교적인 해결을 위한 조건 정비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나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문구는 포함됐다.

일각에선 밴쿠버 회의에서 드러난 한·미·일 3국의 대북 해법 시각차가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밴쿠버 회의는 기본적으로 비공개이며 논의된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다만 강 장관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된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9월 결정된 대북 인도적 지원의 실제 지원 시기와 규모 등에 대해서는 남북 간의 상황 등 전반적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 나간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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