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투쟁수단 될 수 없는 등교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근래 전북 부안 등 우리 사회 몇곳에서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학생의 등교거부 사태는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매우 잘못된 풍조다. 국가적 사업이나 기피.혐오시설 유치를 반대하는 집단 민원인들의 한 투쟁방식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의 등교거부를 부추기는 행위는 즉시 중단돼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재연돼서도 안된다.

등교거부 사태는 원전센터 설치, 맹인학교 시설 이전, 노숙자 시설을 포함한 복지관 건립, 감염성 의료 폐기물 소각장 설치 등의 반대를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등교를 막아야 할 정당성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사안들이다. 하나같이 어른들의 이기심과 지역이기주의의 악취가 진동하는 시위일 뿐이다.

주민들은 기피.혐오시설의 설치는 교육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결정이므로 장차 자녀에게 닥칠 악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도 등교거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걸핏하면 현안 해결 수단의 하나로 자녀의 등교거부를 들고 나오는 것이 과연 부모로서 할 일인지 묻고 싶다. 학생을 볼모로 한 투쟁은 학생의 수업권을 박탈하는 행위이고, 부모의 교육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장애인 시설과 쓰레기 소각장을 건립해서는 안된다고 시위를 일삼는 부모를 보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자녀는 무엇을 배우겠는가. 장애인을 멀리하고 혐오시설이 이웃에 있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공동체 의식이 박약하고 편협한 시민으로 자녀가 성장하는 것을 부모는 바라는가.

전북 부안지역 주민의 자녀 등교거부는 당장 철회돼야 한다. 수업 결손이 장기화하면 학생들만 손해를 본다. 과거 한국전쟁 중에도 학교 수업은 계속됐다. 부모가 자녀를 희생시켜 지역 민원의 해법을 찾으려는 행동은 아이들을 소유물로 착각하는 전근대적 발상으로 용납될 수 없다.

원전센터 설치 여부는 지역대책위원회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면 된다. 교육부도 등교거부를 주도하는 학교운영위원들을 설득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