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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13년째 호령 다이먼 회장, 보물이자 애물인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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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21면

[투자은행의 세계] 커지는 금융업체의 CEO 리스크

13년째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수장을 맡고 있는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압도적인 실적과 존재감으로 ‘모건 금융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AP=연합뉴스]

13년째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수장을 맡고 있는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압도적인 실적과 존재감으로 ‘모건 금융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AP=연합뉴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월가의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정리 해고됐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계속 춤을 추다가 막상 음악이 끝나니 자리가 없어진 찰스 프린스 전 씨티그룹 회장, 제 값 쳐주기 전에는 회사를 안 넘긴다며 벼랑 끝 전술을 펼치다 회사는 파산하고 자신은 위기의 원흉이 되어버린 리차드 풀드 전 리먼브라더스 회장이 그들이다. 그렇지만 난세는 영웅도 낳는 법, 위기의 파고를 뚫고 회사는 물론 자신의 가치를 남다른 반열로 끌어 올린 성공 사례들도 생겨났다. 가장 큰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제이미 다이먼 제이피모건체이스 회장을 꼽는 데 이견을 제시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적 내세워 회사 쥐락펴락 #존재감 너무 커져 견제 못해 #“비운의 황태자로 살 수 없다” #후계 후보자들 줄줄이 보따리 싸 #지주사 회장 연임 논란 한국 #독립 이사 뽑고 후계자 키워야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제이피모건체이스를 자산·시가총액 기준 미국 최대 은행으로 키웠고, 그 보상으로 개인적으로는 억만장자 타이틀까지 거머쥔 다이먼 회장은 ‘모건 금융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월가 은행의 수장 중 금융위기를 거쳐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고, 거기에 더해 10억 달러 이상의 개인 자산을 가진 인물은 그와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 정도다. 공교롭게 두 사람 모두 2006년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금융위기 이후 암 투병을 했지만 이제는 완치된 점도 똑같다.

다이먼 회장의 위상은 미국 최대 금융회사의 수장에 그치지 않는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성공 경험이 뒷받침된 자신감으로 할 말은 하는 ‘월가의 대변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월가를 향한 적대적 시각이 극에 달했던 시절에도 “금융 규제는 미국 은행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경제에 좋을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최근 실적 발표 자리에서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치 행태를 비난하며 “미국인이라는 게 수치스럽다”고 날을 세울 정도다. 블랭크파인 회장이 “은행업은 신의 일(God’s work)”이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후엔 오해 살 발언은 극도로 자제하는 것과 결이 많이 다른 행보다. 그런데 문제는 다이먼 회장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너무 커진 탓에 이젠 그 자신이 회사의 가장 값진 자산인 동시에 가장 큰 리스크가 되어 버린 점이다. 바로 ‘CEO 리스크’다.

학생이 자기 답안지 채점하는 격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

CEO 리스크는 말 그대로 CEO 때문에 생기는 위험이다. 적절하게 견제되지 못하는 CEO가 높은 영향력을 발휘해 회사의 성과를 좌지우지하는 경우, 그리고 승계계획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확실성이 높을 경우에 나타난다. 제이피모건체이스는 CEO 리스크의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먼저 강한 카리스마와 위기관리 능력으로 13년 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다이먼 회장을 이사회가 과연 제대로 감독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막강한 CEO 리더십으로 초래되는 이 리스크는 다이먼 회장이 CEO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진다. CEO가 올바른 경영을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이사회를 CEO 자신이 이끌다 보니 “학생이 자기 답안지를 채점하는 격”이라는 비난도 들린다. 결정적으로 지난 2012년 발생한 ‘런던 고래’ 사건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런던 고래’라고 불리던 런던 지사의 투자담당 직원이 파생상품 거래를 잘못해 62억 달러의 손실을 냈고, 상급자들이 장부를 조작해 이를 숨기려 했던 사건이다. 금융위기에도 끄떡없던 ‘요새(fortress)’같이 튼튼한 리스크 관리를 자랑하던 회사의 명성에 큰 흠집을 낸 이 사건은 “이래서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정치권 공세의 빌미를 제공했다. 다이먼 회장에게 경영권과 감시권을 모두 맡긴 것이 부실한 경영과 막대한 손실의 단초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논쟁이 불거지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중심이 되어 주총에서 다이먼 회장의 이사회 의장직을 뺏으려는 의결권 다툼이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세계 1, 2위 의결권 자문 회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까지 겸직에 반대하며 다이먼 회장에게 등을 돌렸던 2013년, 2015년에는 그 공세가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대다수 주주들은 여전히 다이먼 회장을 지지했다. 만약 안건이 통과되면 회사를 떠나겠다고 다이먼 회장이 엄포를 놓은데다, 주주의 한 사람인 워런 버핏이 “100% 다이먼 편”이라며 공개 지지에 나선 결과다.

다이먼 회장을 둘러 싼 또 다른 CEO 리스크는 불확실한 후계 구도다. 대체하기 쉽지 않은 다이먼 회장의 무게감 때문에 그의 후계자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뜨거운데, 후보 리스트에 오른 이름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즈(FT)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2008년 다이먼 회장과 함께 회사를 지켜낸 핵심 참모 14명 중 지금까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월가 최장 집권 기록이 멀지 않은 다이먼 회장은 회사 내부에 다수의 후계자 후보가 있다고 공언해 왔지만, 사실상 많은 이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난 상황임을 보여준다. 아직 일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다이먼 회장은 자신의 임기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앞으로 5년은 더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해온 지가 벌써 7년이 지났다. 차기 CEO 경쟁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날 만도 하다.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서 5년 추가 임기를 언급한 게 지난해 9월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40대 차세대 다이먼 키드들 정도라야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회사를 떠난 이들 중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기 집권에 가로막힌 비운의 찰스 황태자로 사느니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왕 노릇하는 걸 택한 이들도 다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제스 스태일리 바클레이즈 CEO가 그 길을 걸었다. 대학 졸업 후 제이피모건에서 첫 발을 디딘 후 투자은행사업부 대표까지 오른 순혈 CEO 후보였지만 나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다이먼 회장과 동갑내기인 그가 차기를 노리는 무리수를 두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빌 윈터스 스탠다드차타드 CEO와 찰스 샤프 뉴욕멜런은행 CEO는 다이먼 회장에게 좌천당하고 회사를 떠나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례다. 결과적으로 다이먼 회장은 자신의 후계자 후보들을 애써 키워 경쟁사의 CEO로 앉힌 셈이고, 제이피모건체이스는 ‘CEO 사관학교’가 돼 버렸다.

계열사 사정 훤한 2인자 양성할 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지주사의 CEO 리스크가 논란거리다. 금융지주사 회장의 ‘셀프 연임’, 즉 회장 직을 연임하기 위해 ‘현역 프리미엄’을 극대화한다는 금융 당국의 문제 제기가 발단이다.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불공정한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계 계획도 당연히 부실할 거라는 의심이 함께 깔려있다. 이를 신호탄으로 올해는 금융 당국 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드세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우리나라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미국 금융지주사 제이피모건체이스의 다이먼 회장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런던 고래 사건 후 회사 지배구조에 대한 집중 공격을 막아냈고, 자신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후계자 후보군 관리의 아쉬운 경험을 떠올리며 다음의 세 가지를 말하지 않을까 싶다.

첫째, ‘셀프 규제’ 강화다. 시장과 금융당국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사외이사보다 까다로운 조건의 ‘독립이사(independent director)’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생각해 볼만하다. 뉴욕증권거래소가 상장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는 이사의 독립성 기준에 맞춰 이사 진을 선출하는 형태다. 다이먼 회장이 2013년 이사회 의장직을 방어하려고 던진 신의 한수가 ‘선임 독립이사’를 뽑아 자신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강도를 끌어 올린 것이었다. 골드만삭스도 2012년 같은 카드로 블랭크파인 회장의 겸직을 지켜냈다.

둘째는 후계자감 금융지주사 사장을 키우는 것이다. 금융지주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계열사 사업을 훤히 꿰고 있는 2인자를 양성하는 전략이다. 다이먼 회장과 블랭크파인 회장 모두 각 금융지주사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이다. 다이먼 회장은 유력한 후계자 후보였던 개리 콘 전 사장 겸 COO가 백악관으로 떠난 뒤에도 새로 승진한 두 명의 공동 사장 겸 COO를 좌우에 거느리고 후계 구도를 정립한 블랭크파인 회장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은행 출신에서 탈피해 투자은행(증권사) 유전자(DNA)를 지닌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다. 정체된 은행업에서 벗어나 자본시장에서 기회를 찾으려면 리스크에 대한 보수적 자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경험이 후계자의 필수 요건이라는 것은 다이먼 회장의 평소 지론이기도 하다.

최정혁 전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경영학박사. 씨티은행, 크레디트 스위스, UBS에서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현재 대학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jungcho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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