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은 다시 살려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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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마을 비리와 부정이 끼친 피해와 충격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 중에서도 정신적인 피해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다.
국민을 그토록 경악하게 하고 분노하게 한 건 차치 하고라도 좌절과 배신과 허탈감에까지 빠지게 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 모두가 피해자다. 그러나 가장 참담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순수 새마을 지도자들이고 「새마을 운동」 그 자체와 「정신」이다.
이는 새마을의 전국 조직이 뿌리째 흔들리고 새마을 운동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며 손을 터는 일선 지도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도 익히 알 수 있다. 새마을 비리가 추악한 모습으로 드러나자 그 동안 새마을에 미친 사람처럼 헌신과 봉사로 일관해 왔던 새마을 지도자들이 집단 탈퇴를 선언하는가 하면 창피하다며 모자까지 내팽개치는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침마다 자진해서 하던 마을조기 청소나 교통정리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초록이 동색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아예 이사하겠다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새마을의 권력형 부조리는 새마을의 존폐에 위기를 가져다줄 만큼 엄청난 회오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가 근대화하고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게 공헌했다. 근면·자조·협동으로 요약되는 이 운동은 무기력과 허탈에 빠졌던 농촌 주민들에게 스스로 노력하고 이웃을 돕고 공동으로 노력하면 안될 게 없다는 자신감을 일깨워 주었다.
관 주도로 시작된 이 운동은 지나친 관의 개입과 경쟁으로 폐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잘만 유도했더라면 유사이래 최초의 국민정신 운동으로 성공할 수도 있었다.
모처럼 발아한 정신운동을 소중히 가꾸고 발전, 승화시키기는커녕 먹칠을 하고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새마을의 이미지를 얼룩지게 한 게 다름 아닌 새마을 부정이란 걸 생각하면 그 죄과는 사법적 재단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렇다고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다. 전쟁의 폐허에서도 그나마 이삭을 줍고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돌아가 새마을을 복원하고 복구하는 용기를 갖고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마을운동 중앙 본부가 새 회장에 김 준 초대회장을 추대하고 새 출발을 다짐한 건 다행이다.
새 집행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무엇보다 하루빨리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마을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그건 관 주도에서 순수 민간 주도로 탈바꿈시키는 것이고 관 의존에서 탈피해 자율적인 운동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떠들썩한 행사위주, 전시위주에서 벗어나 조용하면서도 착실한 자발적 운동으로 바꿔야 한다. 또 21세기를 바라보는 민주화시대에 걸맞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이웃과 협동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 상을 구축하는 순수 정신운동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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