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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부른 박상기…계산된 발언인가, 아마추어리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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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된 발언일까… 법무장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 파장

지난 11일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지하는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박상기 법무부 장관. [중앙포토]

지난 11일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지하는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박상기 법무부 장관. [중앙포토]

박상기(66ㆍ사진)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발언’을 놓고 정부 안팎에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 장관의 발언이 암호화폐 시장 안정화를 위한 계산된 ‘구두 개입’인지, 아니면 학자 출신 장관의 ‘아마추어리즘’인지를 놓고도 서로 다른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조차도 "코멘트는 없다" #법무부서도 '발언수위' 지적 나와 #박 장관 개인에 대한 비판도 제기돼

12일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의 코멘트(언급)는 없다”며 “해당 부처에서 확인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비서실장ㆍ정책실장 등 양 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 암호화폐 거래 규제와 관련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내부에서도 박 장관의 발언을 놓고 지금까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부 관계자는 “간담회 전날부터 비트코인과 관련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박 장관이 알아서 수위조절을 할 것으로 봤다”며 “거래소 폐지와 같은 강경책을 간담회에서 말씀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 전날인 지난 10일에도 “법무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때문에 법무부 내부에서도 충분히 관련 질문을 나올 것으로 보고 사전 대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에 더 큰 혼란만 야기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국무조정실이 주재한 가상화폐 관련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도 법무부는 ‘가상증표 거래 규제를 위한 특별법’을 건의했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회의 때도 법무부는 비트코인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위원회는 머뭇거리는 입장이었고, 상위부처인 기재부에서 법무부 입장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무조정실 주재 회의 이후부터 법무부는 ‘범정부 가상화폐 규제 태스크포스(TF)’에서 주무부처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 12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가상통화관계관련 차관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도입하고 가상화페 거래소 폐쇄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가상통화관계관련 차관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도입하고 가상화페 거래소 폐쇄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법무부의 암호화폐 시장 규제 의지는 올 들어 더욱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부터 비트코인ㆍ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의 ‘김치 프리미엄(글로벌 시장과 국내 시장 간 암호화폐의 가격 차)’이 시세 대비 50% 수준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금융위도 더 이상의 시장 과열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번 내비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암호화폐가 금융 거래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ㆍ경제 부처에서 대책 마련에 난색을 표했고, 규제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법무부가 ‘총대’를 맨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거래소 폐쇄는 정말 마지막에 할 일, 즉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이었다”고 말했다.

12일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서도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 [뉴시스]

12일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서도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 [뉴시스]

실제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1일 국회에서 “거래소 폐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최 위원장 역시 ‘현행법하에 과열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특히 최 위원장은 ‘도박장 개설’을 법적 근거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지하겠다는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거리를 뒀다.

법무부 내 암호화폐 주무부서를 중심으로 ‘강경론’이 득세한 것도 ‘폭탄 발언’의 원인일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ㆍ중계를 범죄화하고 처벌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법무부 내에서 힘을 얻었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금세 묻히면서 거래소 폐쇄론이 장관의 인식을 지배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경제ㆍ금융부처 관계자들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결국 박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은 사전 조율이 충분히 거치지 않은 방안이 고위 공직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일각에선 학자 출신 장관의 정무적 감각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회의 섞인 비판도 제기됐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아직도 자신이 법대 교수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라며 “제발 1970~80년대 사고로 법을 통해 사안을 해결하려 들지 말고, 시장을 모르면 그냥 시장에 좀 맡겨뒀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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