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된 발언일까… 법무장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 파장
박상기(66ㆍ사진)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발언’을 놓고 정부 안팎에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 장관의 발언이 암호화폐 시장 안정화를 위한 계산된 ‘구두 개입’인지, 아니면 학자 출신 장관의 ‘아마추어리즘’인지를 놓고도 서로 다른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조차도 "코멘트는 없다" #법무부서도 '발언수위' 지적 나와 #박 장관 개인에 대한 비판도 제기돼
12일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의 코멘트(언급)는 없다”며 “해당 부처에서 확인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비서실장ㆍ정책실장 등 양 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 암호화폐 거래 규제와 관련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내부에서도 박 장관의 발언을 놓고 지금까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부 관계자는 “간담회 전날부터 비트코인과 관련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박 장관이 알아서 수위조절을 할 것으로 봤다”며 “거래소 폐지와 같은 강경책을 간담회에서 말씀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 전날인 지난 10일에도 “법무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때문에 법무부 내부에서도 충분히 관련 질문을 나올 것으로 보고 사전 대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에 더 큰 혼란만 야기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국무조정실이 주재한 가상화폐 관련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도 법무부는 ‘가상증표 거래 규제를 위한 특별법’을 건의했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회의 때도 법무부는 비트코인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위원회는 머뭇거리는 입장이었고, 상위부처인 기재부에서 법무부 입장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무조정실 주재 회의 이후부터 법무부는 ‘범정부 가상화폐 규제 태스크포스(TF)’에서 주무부처 역할을 맡고 있다.
법무부의 암호화폐 시장 규제 의지는 올 들어 더욱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부터 비트코인ㆍ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의 ‘김치 프리미엄(글로벌 시장과 국내 시장 간 암호화폐의 가격 차)’이 시세 대비 50% 수준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금융위도 더 이상의 시장 과열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번 내비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암호화폐가 금융 거래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ㆍ경제 부처에서 대책 마련에 난색을 표했고, 규제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법무부가 ‘총대’를 맨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거래소 폐쇄는 정말 마지막에 할 일, 즉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1일 국회에서 “거래소 폐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최 위원장 역시 ‘현행법하에 과열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특히 최 위원장은 ‘도박장 개설’을 법적 근거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지하겠다는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거리를 뒀다.
법무부 내 암호화폐 주무부서를 중심으로 ‘강경론’이 득세한 것도 ‘폭탄 발언’의 원인일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ㆍ중계를 범죄화하고 처벌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법무부 내에서 힘을 얻었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금세 묻히면서 거래소 폐쇄론이 장관의 인식을 지배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경제ㆍ금융부처 관계자들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결국 박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은 사전 조율이 충분히 거치지 않은 방안이 고위 공직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일각에선 학자 출신 장관의 정무적 감각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회의 섞인 비판도 제기됐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아직도 자신이 법대 교수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라며 “제발 1970~80년대 사고로 법을 통해 사안을 해결하려 들지 말고, 시장을 모르면 그냥 시장에 좀 맡겨뒀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