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 해메며 〃신들린 시작〃|시인 박정만씨 6개월 동안 6권의 시집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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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때 나는 겨우 술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몸은 완벽한 탈진 상태였고 정신은 기화하는 액체와도 같이 흐물 거렸다. 새삼 사는 일이 눈물겹게 생각 되었지만 자살를 꿈꿀 힘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온옴이 물갈이 뜨거워봤다.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에 따라 나는 머리속에서 들끓는 시어의 화젓가락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한편을 쓰고 나면 또 한편의 시가 어느새 대기하고 있었다…』시인 박정만씨(42)가 6개월동안 6권의 시깁을 출간해 문단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같은 일은 우리 문학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수 없다.
그는 지난해 8월20일부터 9월10일사이에 3백편의 시를썼다. 그리고 그 시평들을 정리해 『무지개가 되기까지는』(문학사상사간·87년10월 출간),『서러운 땅』(문학사상사간·87년11월출간),『저 쓰라린 세욀』(청하간·소년12월 출간),『혼자있는 봄날』(나남간·88년1월출간),『어느덧 서쪽』(문학세계사간·88년3월출간)등 5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내주중으로 『슬픈 일만 나에게』(평민사간)를 출간한다.
『빈년 늦봄 동료문인의 필화사건에 함께 휘말려 심한 고생을 한 후 내내건강이 안좋았어요. 사는일이 너무 어려웠고 아내와의 결별도 엄청난 충격이 었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심한 자페증에 시달렸고 일체의 외출을 끊었지요. 하루에 여섯병씩 소주를 마셨 읍니다』그는 스스로「접신의시간」속에 살았다고 했다. 어떤날은 하루에 30편씩 시를 썼다.
너무 많이 써지자 엄청난 공포가 다가왔고 그 공포를 이기는 길은 역설적 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끌고 가려는 시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방법밖엔 없었다.
2O일동안 그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수백편의 시들로부터 풀려 났을때 그는 자신이 쓴 작품들을 기억조차 할수 없었다.
박정만시인은 그러나 결코 다작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68년 문단 데뷔이후 지난해까지 20년동안『잠자는 돌』『맹꽁이는 언제우는가』등 단 두권의 시집만을 출간 했었다.
이번에 그가 미친 듯이 써낸 3백여편의 시들은 그러나 모두 수준작들 이라는 점에서 문단은 더욱 놀라고 있다.
『겨울가면 아득한 길이 있다고/이 말씀 없었으면 나는 죽었지/그런데 산뻐꾸기 저물어 봄날이가도/가야할 길은 산속으로 묻혀갔으니』(『초봄의약속』 중에서)
그의 시편들은 대부분 유년체험을 바탕으로 그를 매우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삶은 고통스럽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립고, 서럽고,아름다와 차마 죽을수 없었다고 평론가 김재홍씨는『그의 시들은 허무주의와 죽음을「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의 시보다 강하다』고 했고, 평론가 최동호씨도『그는 이승과저승의 길을 넘나들며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뛰는 섬광들을 포착하고 있다』며 박정만씨의「시적 폭발」은 양적 으로나 질걱으로 모두「문학사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1월 간경변증으로 마침내 쓰러졌고 한달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그는 현재 술을 마시지 못하며 시는 단 한줄도 못쓰고 있다.『그 불가해한 경험은 이미 나의것이 아님니다. 나는 그런 시간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입니다.』
박정만씨는 내주 출간되는 시집『슬픈 일만 나에게』까지 합처 6개월동안 6권의 시집을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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