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증오·슬픔·기쁨의 유래 들여다보는 사람이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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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로 제4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 손홍규씨. "이상은 내가 가장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무겁고 귀중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사진 문학사상사]

중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로 제4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 손홍규씨. "이상은 내가 가장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무겁고 귀중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사진 문학사상사]

42회째를 맞은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손홍규(43)씨의 중편소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가 선정됐다. 60대 일용노동자-비정규직 조리원 부부의 각박한 삶을 통해 관계와 인생의 의미를 묻는 묵직한 작품이다.
 2001년 등단한 손씨는 우리 안의 타자에 주목한 장편 『이슬람 정육점』 등 현실을 재현하는 반듯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8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봄 원고청탁을 받고 한 번쯤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쓴 적 없는 중편에 도전했다가 뜻밖의 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소설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분노, 증오, 슬픔, 기쁨, 고통의 유래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며 "이번 수상으로 혼자 아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는 답을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은 시간의 역순으로 부부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다. 시선을 휘어잡는 강렬한 서사 대신 부부의 사랑과 신뢰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가슴 아프고 허망한 과정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손씨는 "내게 소설 쓰기는 '마음의 구조'를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한때 깊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돌이킬 수 없게 멀어진 관계 파탄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두 사람이 상처받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옮긴 게 이번 당선작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마음의 구조를 더듬는 작업은 계속할 것인데,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소설 쓰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며 "오래전 내 꿈은 소설가였고 지금 나는 소설가인데 여전히 내 꿈은 소설가"라고 했다.

중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로 42회 이상문학상 수상 #일용노동자-비정규직 조리원 부부의 고통 그린 작품

심사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권영민씨(오른쪽)는 "사실적 진술과 환상적 서술이 뒤섞여 있어 줄거리를 알아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진지한 소설 실험과 성취가 놀랍다"고 했다. [사진 문학사상사]

심사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권영민씨(오른쪽)는 "사실적 진술과 환상적 서술이 뒤섞여 있어 줄거리를 알아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진지한 소설 실험과 성취가 놀랍다"고 했다. [사진 문학사상사]

 올해 이상문학상 심사는 문학평론가 권영민·권택영·김성곤·정과리, 소설가 윤후명씨가 했다. 손씨 당선작에 대해 "장편소설이 추구하는 서사의 역사성과 단편소설이 강조하는 상황성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있다"고 평했다. 상금은 3500만원, 정찬의 '새의 시선' 등 5편의 우수상 수상작과 함께 묶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이달 19일께 발간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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