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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이 이한열 역할 자처한 것부터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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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준환 감독은 ’영화 ‘1987’을 본 관객들에게 당신이 바로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준환 감독은 ’영화 ‘1987’을 본 관객들에게 당신이 바로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7년 민주화 열기를 담은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이 개봉 열흘 남짓만에 관객 400만을 돌파했다. 앞서 개봉한 ‘신과함께-죄와 벌’이 올해 첫 번째 천만영화가 된 데 이어 흥행세가 어디까지 뻗어갈 지 주목된다. ‘1987’은 영화를 본 관객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관람객 평점 9.28점을 기록했다.

영화 ‘1987’ 장준환 감독 #2년 전엔 만들 수 있을까 걱정 #비극적 사건 팩트 묘사에 충실 #아내 문소리도 목소리 출연

‘1987’은 2003년 ‘지구를 지켜라’로 데뷔한 장준환(48)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장 감독은 “영화를 편집할 때부터 지금까지 자꾸 눈물이 앞설 때가 많다”고 말하며 쑥스러워 했다.

극장에서 ‘1987’을 보고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관객들이 많더라. 개봉 후 관객들을 지켜본 소감은.
“관객들과 굉장히 깊게 소통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창작자는 소통을 통해 위로받는데, 요즘 제가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 감독 입장에서 관객 수도 매우 중요하지만, 관객들과 깊이 통했다는 느낌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여기까지 온 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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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깊게 소통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바로 며칠 전에도 관객 평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관객 자신이 1987년 당시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개인사를 소상히 적은 글을 읽다가 울컥한 거다. 엄마랑 영화를 같이 봤다는 딸이 엄마에게 ‘고맙다’며 안아줬다는 글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게 바로 이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만든 영화라 이런 반응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언론 시사회를 마치고 기자 회견에서도 눈물을 보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제 영화를 보고 감동해 운 게 아니다. 영화를 보며 옆에 앉은 배우들이 울어 따라서 눈물이 났는데 쉽게 그치지 않더라. 촬영 때도 이한열 열사 어머니께서 현장을 찾으셨는데, 김태리 배우의 손을 잡고 ‘우리 아들도 이런 여자 친구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말씀하실 때도 함께 울었다. 생때같은 스무 살짜리 아들을 잃고 30년을 살아온 삶을 우리가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나. 눈물은 내성이 생기지도 않더라. 아직도 난 많이 울고 있다.”
‘1987’이 실제로 제작될 수 있을지 걱정 많이 했다고.
“정말 만들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탄압 같은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느끼기엔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런 영화를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를 만들고 불이익을 겪는 사례들이 없지 않았으니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만들 각오였나.
“이 이야기는 정말 만들고 싶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일곱 살인 딸 아이에게 현재를 일궈낸 사람들의 뜨거움과 용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극중 ‘연희네슈퍼’가 있는 목포 서산동의 촬영 현장.

극중 ‘연희네슈퍼’가 있는 목포 서산동의 촬영 현장.

여러 인물이 바통을 이어 받듯이 차례로 등장하며 사건이 전개되는 게 인상적이다.
“김경찬 작가가 쓴 시나리오 초고가 워낙 흥미로웠다. 적대 인물(안타고니스트)인 박처장(김윤석)을 가운데 두고, 많은 인물이 모이고 부딪히며 결국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 발전해가는 구도가 독특해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야기의 가치와 더불어 그런 도전의 의미가 없었다면 ‘1987’은 택하지 않았을 거다.”
제작이 불투명하던 상황에서 ‘희망’을 보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강동원 캐스팅이었다. 처음으로 우리 영화에 힘을 실어준 배우니까. 강동원씨가 워낙 러브콜을 많이 받는 배우인 데다 기획 당시엔 이런 영화가 환영받을 분위기가 아니어서 대본을 건네기도 민망했다. 시나리오가 나오면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며 ‘여기서 맡을 역은 하나밖에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역이라도 하겠다’고 한 것이다. 비록 작은 역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이고 서슬 퍼런 정국에 선뜻 하겠다고 해준 게 엄청난 힘이 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극화하며 지키고자 한 원칙 같은 게 있었나.
“실화 자체가 가진 극적인 긴장감이 워낙 컸기에 팩트에 충실한 게 우선이었다. 극화를 위해 한 두 명 혹은 여러 명의 실존인물을 하나의 캐릭터(교도관, 기자 등)에 녹이기도 했지만 진정성을 해치지 않는 것,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유가족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하는 것도 신경 쓴 부분이다.”
아내인 문소리 배우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시나리오를 함께 읽고 작품에 대해, 캐릭터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광장 시위 현장을 촬영할 땐 아내가 현장에서 시위 연기를 지도해줬고. 어떻게든 ‘1987’에도 캐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적당한 배역이 없어 결국 영화의 엔딩에 ‘호헌철폐, 독재타도’ 선창하는 목소리만 나왔다.”
이 영화가 끝이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1987년 그날, 그 광장에서 나와 우리는 제대로 걷고 있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2017년에 또다시 광장으로 나와야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돌아봤으면 좋겠다.”
전작 ‘지구를 지켜라’는 블랙 코미디였고,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하드 보일드한 복수극을 그린 스릴러이다. ‘1987’은 전작과 결이 매우 다른데.
“아주 다르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저는 많이 안 변한 것 같다. ‘지구를 지켜라’도 그렇고, ‘화이’도 모두 천만 관객을 꿈꾸며 작업했다. 모두 제가 재미있으면 남들도 재미있을 거라고 믿고 작업했다(웃음). ‘1987’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마이너하고, 튀는 감성, B급 감성이 제 안에 유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구를 지켜라’하고 명령문으로 제목 지은 것처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음 영화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무엇이 되더라도 ‘대중성’이라는 틀 안에 갇히고 싶지 않다. 그건 나한테 독이 될 테니까.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2년 혹은 3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긴 시간을 잘 버티려면 내가 먼저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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