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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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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인도.파키스탄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크리켓 배트를 휘두르는 사진이 전 세계에 보도됐다. 크리켓이 국민 스포츠인 이들 나라에 친근감을 주려고 이런 장면을 연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크리켓은 부시에게 그리 친숙한 스포츠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종목은 호주.뉴질랜드.인도.파키스탄 등 과거 영국과 인연이 많은 몇몇 나라에서만 인기를 누리는 '지역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은 11명이 하는 게임으로 야구의 사촌쯤 된다. 야구와 달리 주장을 제외한 10명이 모두 아웃돼야 공격과 수비를 교대하기 때문에 경기를 마치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국제 경기 등에선 이를 줄여 하루 만에 끝내는 '원데이 게임'도 하고 있다.

룰이 이렇다 보니 방송 중계하기도, 관람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국제적인 저변이 좀처럼 넓어지지 않고 있다. 1975년부터 세계선수권대회 격인 크리켓 월드컵을 열고 있지만 한 번이라도 참가해 본 나라가 18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도.파키스탄에선 인기가 엄청나다. 92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우승한 파키스탄팀의 주장 임란 칸은 인기를 업고 그 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의 한 사람이 됐다. 영국 등 영연방 어디를 가나 VIP 대접을 받는다. 그가 94년 파키스탄 라호르에 암 전문 자선병원을 확장해 문을 열 때는 영국의 다이애나비도 축하를 위해 멀리서 날아왔다.

인도에서도 선수들은 국민스타 대접을 받는다. 앙숙인 파키스탄과 경기를 할 때는 두 나라 모두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나 야구 경기를 할 때를 연상하면 된다. 그런데 중국이 크리켓을 국가적 스포츠로 키우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다. 중국에선 아주 생소한 종목이지만 장차 스포츠 외교에 활용하기 위해 육성해 두겠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경제무대에서 주요 경쟁자가 될 인도와 친하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지지난해에야 국제크리켓협회에 가입한 중국은 2009년까지 전국에 720개 이상의 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거기에 2019년 크리켓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목표도 밝혔다. 외교적 필요가 있고, 인적 자원이야 무한한 나라라지만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하다. '하면 된다'는 한국의 트레이드 마크가 중국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느낌이다. 한국은 이런 거대한 야심의 나라와 이웃하고 있다.

채인택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