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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준희'는 그날 어디서 숨졌나…경찰 "집" VS 친부 "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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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희(5)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4일 오전 현장검증을 위해 전북 완주군 봉동읍 친부 고모(37)씨 아파트에 고씨를 데리고 가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고준희(5)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4일 오전 현장검증을 위해 전북 완주군 봉동읍 친부 고모(37)씨 아파트에 고씨를 데리고 가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야, 이 쓰레기야! 얼굴 좀 벗겨!"
4일 오전 10시 전북 완주군 봉동읍 한 아파트. 고준희(5)양의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친부 고모(37)씨가 나타나자 곳곳에서 욕설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29일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준희양이 지난 4월 26일까지 살던 집이다.

경찰, 사체유기 친부·내연녀 모녀 현장검증 #주민들 "치 떨린다" 격앙…친부 "안죽였다" #집 앞에 "준희야, 미안해" 쪽지와 국화 꽃 #장난감은 내연녀母가 어린이날 선물로 사 #"거스름돈은 '노잣돈'으로 준희 품에 뒀다" #아동학대치사죄 추가해 이번주 검찰 송치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 덕진경찰서는 이날 준희양의 사망 장소로 추정되는 고씨의 집과 시신이 유기된 군산 내초동 고씨의 선산 등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지난해 말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고씨와 내연녀 이모(36)씨, 내연녀 어머니 김모(62)씨 등 3명이 당시 범행을 재연했다. 내연녀 이씨는 이날 아침 급체(急滯) 증세를 보여 여성 경찰관이 대역을 맡았다. 이들은 지난해 4월 27일 오전 2시쯤 군산의 한 야산에 준희양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다.

고모(37)씨가 친딸인 준희양의 숨진 장소로 추정되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준희양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고모(37)씨가 친딸인 준희양의 숨진 장소로 추정되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준희양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첫 번째 검증이 이뤄진 고씨 아파트 주변에는 현장검증에 나선 경찰들과 취재진, 주민 등 200여 명이 몰렸다. 주민들은 아파트 베란다 등에서 경찰의 현장검증 과정을 지켜봤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모(39·여)씨는 "부모가 아픈 아이를 발로 밟고 학대했다니 죽여버리고 싶다. 태어나게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인근 마을 주민 송모(64·여)씨는 "우리 아들이 여기 살다 이사 갔는데, 생각만 해도 벌벌 떨린다"고 말했다.

고씨 집 현관문 앞에는 국화꽃 한 송이와 과자 한 봉지, 접착식 메모지에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준희양의 친이모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쪽지에는 "준희야 이모가 꺼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늘에선 괴롭고 외로운 거 아프고 무서운 거 그런 거 없이 편안하고 따뜻하고 포근하길 기도하고 또 기도할게"라고 적혀 있었다.

고모(37)씨가 친딸인 준희양의 숨진 장소로 추정되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고모(37)씨가 친딸인 준희양의 숨진 장소로 추정되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거실 선반에는 고씨가 조립한 로봇(건담) 모형 10여 개가 진열돼 있었다. 고씨가 시신을 유기한 지난해 4월 27일 이후에도 본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ㅎㅎ' 'ㅋㅋ' 등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사진을 올리며 자랑하던 것들이다.

경찰은 준희양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시점·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고씨와 문답을 주고받았다. 경찰은 "준희가 이미 집에서 숨진 것 아니냐"고 계속 물었지만, 고씨는 "차 안에서 숨이 멎었다"고 부인했다. 현장에서 고씨와 경찰이 나눈 대화를 종합하면, 봉동의 한 회사에 다니는 고씨는 지난 4월 24일 야간 근무를 마치고 이튿날인 25일 오전 12시30분에 귀가했다. 당시 집에는 준희양과 내연녀 이씨, 이씨의 친아들(7)이 있었다.

고준희(5)양 역의 마네킹. 완주=김준희 기자

고준희(5)양 역의 마네킹. 완주=김준희 기자

고씨는 이씨가 준희양을 발로 밟고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말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는 "저 사람이 얼만큼 하나. 어디까지 학대할 것인가. (내연녀) 이씨를 말렸으면 준희가 발로 밟히진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그는 이날 재연한 것 외에 이씨가 준희양을 폭행한 모습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씨가 욕실에서 준희를 잡고 샤워를 시키면 '준희가 안 씻으려고 욕조에 기어 올라가 자주 굴러 떨어진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고씨는 지난해 1월 말 이혼 소송 중인 전처(준희양 친모)가 맡긴 준희양이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밥을 제때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30㎝ 자로 등과 엉덩이를 때리고, 발목을 수차례 밟는 장면을 마네킹을 이용해 재연했다. 고씨는 "지난해 (4월) 25일 새벽 이씨가 준희를 폭행하고 나서 준희가 정신이 왔다갔다 하고, 호흡이 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씨와 이씨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준희양이 있던 작은방에서 자다 새벽에 작은방 문을 열어 놓은 채 거실에서 잤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26일)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에 내연녀 이씨 아들을 유치원에 보낸 뒤 살펴보니 "준희의 호흡이 굉장히 안 좋았다"고 했다.

'고준희(5)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4일 오전 전북 완주군 봉동읍 친부 고모(37)씨 아파트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한 가운데 현관문 앞에 준희양의 친이모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쪽지와 국화, 과자 한 봉지가 놓여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고준희(5)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4일 오전 전북 완주군 봉동읍 친부 고모(37)씨 아파트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한 가운데 현관문 앞에 준희양의 친이모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쪽지와 국화, 과자 한 봉지가 놓여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고씨는 '준희의 몸 상태가 굉장히 위중했는데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아동학대로 오해받지 않을까(두려웠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119에 신고를 안 한 이유에 대해서는 "준희가 죽을 줄 몰랐다"고 답했다. 고씨는 "준희를 안아 아파트 앞에 주차된 내 차에 태웠는데 숨이 멎었다"고 했다. 그는 승용차 뒷좌석에 준희양을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을 재연했다. 고씨는 당시 내연녀 이씨와 함께 본인 승용차를 운전해 전주시 인후동에 있는 이씨 어머니인 김씨 집에 간 것으로 조사됐다. 뒷좌석에 숨진 준희양을 태우고서다. 이들은 지난해 4월 26일 오전 8시30분쯤 김씨가 사는 전주에 도착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고씨는 '준희에게 미안한 맘이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 "죽을 때까지 사과하고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찰 조사와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한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왜 미안하냐'고 묻자 그는 "준희를 지켜주지 못해서"라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경찰이 그와 내연녀에게 지우려는 아동학대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고씨는 "제가 저지른 잘못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준희를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경찰의 현장검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준희양 친부 고모(37)씨. 완주=김준희 기자

경찰의 현장검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준희양 친부 고모(37)씨. 완주=김준희 기자

고씨 등이 김씨 집에 준희양 시신을 옮겨 놓은 상황에 대한 현장검증은 전주 덕진경찰서 뒷마당에서 이뤄졌다. 경찰은 고씨 등 3명이 김씨 집에서 사체유기를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준희양 시신을 김씨 방에 눕힌 뒤 한동안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출근하는 고씨가 이씨를 데리고 봉동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당시 2시간 동안 물로 빤 수건으로 준희양 시신을 닦은 뒤 휴지를 말아 코와 입을 막았다고 했다. 그는 "수건으로 (준희) 얼굴과 다리 등을 감싸고 얇은 이불로 덮은 뒤 끈으로 몸을 묶었다"며 "시신을 닦을 때는 (준희) 몸이 굳어있지 않았다"고 했다.

4일 전주 덕진경찰서 뒷마당에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닦는 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내연녀 어머니 김모(62)씨. 전주=김준희 기자

4일 전주 덕진경찰서 뒷마당에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닦는 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내연녀 어머니 김모(62)씨. 전주=김준희 기자

군산 야산에서 준희양 시신이 발견됐을 때 옆에 있던 장난감의 정체도 밝혀졌다. 김씨는 "(어린이날인) 5월 5일에 준희에게 장난감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문을 잠그고 집 앞에 나가 장난감을 사왔다. (준희) 가슴에 장난감을 사고 남은 돈을 (저승길에) '노잣돈'으로 쓰라고 놓았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검증은 준희양의 시신이 암매장된 군산 내초동 야산에서 오후 12시50분쯤 마무리됐다. 경찰은 고씨와 내연녀 어머니 김씨가 김씨 승용차 뒷좌석에 준희양 시신을 실은 뒤 야삽 등을 챙겨 고씨 할아버지 묘가 있는 군산 선산에 암매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이 준희양 시신을 유기하는 동안 내연녀 이씨는 전주 집에서 기다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준희양이 숨지기 전 온몸에 수포가 생기는 대상포진에 걸린 점, 고씨가 발로 밟아 준희 발목에 피고름이 생기고 기어다닐 정도로 종아리가 퉁퉁 부은 점,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는데도 지난해 1월 이후 치료나 약을 처방받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보호 의무가 있는 친부 고씨와 계모 격인 이씨가 준희양을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제때 치료하지 않아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내연녀 어머니 김모(62)씨가 지난해 4월 27일 준희양 시신(마네킹)을 본인 승용차 뒷좌석에 실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내연녀 어머니 김모(62)씨가 지난해 4월 27일 준희양 시신(마네킹)을 본인 승용차 뒷좌석에 실은 모습. 전주=김준희 기자

김영근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고씨 등 3명에게 사체유기 외에 아동학대치사를 적용해 이번 주 안에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학대로 아동을 숨지게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완주·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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