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뒤집어 생각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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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사는 집안에서만 우유를 배달해 먹던 시절도 있었다면 많은 사람이 믿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은 흔해 빠진 것이 우유다. 우유는 가장 따분하고 유치하고 매력적이지 못한 음료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유와 함께 유아기를 보낸 아이들도 중학교에 들어가면 스스로 콜라 세대로 편입되며, 국가도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우유를 마치 빈자의 음료인 양 우습게 본다.

1980년만 해도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 한 사람이 일 년에 평균 30갤런의 우유를 마셨다. 93년 그 숫자는 24.1갤런으로 줄어드는데 무려 20%나 감소한 것이다. 만약 다른 업종에서 20%의 소비 감소가 발생했다면 도산하는 회사가 줄을 이었으리라. 다행히도 캘리포니아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우유 가공 업체들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 매출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물론 우유 소비 촉진을 위한 협회 차원에서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우유는 따분하지 않다, 우유는 유치하지 않다, 우유는 매력적이다 등등을 광고에서 주장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한 손에 1.5ℓ짜리 우유 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조깅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멋있는 광고도 있었으나 아무도 그 사람을 따라하지는 않았다. 과연 광고가 우유 소비를 늘릴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 우유 가공 업체들의 단체인 CFMPAB의 기금에 의해 94년부터 집행된 '우유는?(got milk?)' 캠페인이 이 위대한 일을 해낸다. 기존의 우유 소비 촉진 광고에는 반드시 우유가 등장하며 우유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우유는?' 캠페인에는 역설적으로 우유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먹을 때 가장 우유 생각이 나는 식품들이나 우유 없이는 먹는 게 거의 불가능한 식품들이 등장한다. 초콜릿 칩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사람들은 신선한 우유 한 잔이 간절히 그립다. 땅콩 버터와 잼을 듬뿍 바른 샌드위치를 먹을 때도 그렇다. 잘 익은 컵 케익은 또 어떻고? 바나나 송송 썰어 넣고 시리얼 듬뿍 담은 다음 입맛을 다시며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우유가 떨어졌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있을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 막상 필요할 때 없으면 아기가 빨고 있는 우유병, 심지어 고양이가 핥고 있는 먹이통까지 곁눈질하게 되는 것이 우유인 것이다.

정치도 우유처럼 점점 소비가 줄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이 정치 발전을 위해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정치도 소비 촉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연일 거론되고 있는 여야의 후보들이 과연 맛있는 초콜릿 칩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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