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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두산-LG 팬은 왜 손을 잡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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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지 한참이지만, 이번 겨울 팬들은 야구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잠실구장에는 팬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잠실이 홈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 팬들이 시위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지난달 30일 오후 2시쯤, 두산 유니폼 상의를 입거나 야구 모자를 쓴 사람들이 잠실구장 두산 베어스 사무실 앞으로 모여들었다. 엄마와 같이 온 초등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까지 20명 남짓 모였다.

서울 잠실구장에서 니퍼트와 재회하기 위해 집회를 열고 있는 두산팬들.

서울 잠실구장에서 니퍼트와 재회하기 위해 집회를 열고 있는 두산팬들.

 서로 인사를 마친 이들은 준비해 온 물품을 꺼냈다.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36·미국) 관련 용품이었다. 니퍼트 광고가 실린 신문, 니퍼트 등 번호(40번)가 적힌 마스크, 니퍼트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 등이었다. 니퍼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어 구단 사무실 출입문에 붙인 이들은, 잠실구장을 돌며 시위성 행진을 했다. 그리곤 니퍼트 사진과 플래카드를 들고 종합운동장 지하철역 앞에 서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두산 팬이나 우연히 지나가던 팬들이 이들을 격려했다.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두산 베어스 사무실 앞.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두산 베어스 사무실 앞.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두산 베어스 사무실 앞.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두산 베어스 사무실 앞.

팬들은 두산 구단에 니퍼트 재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0일부터 매주 수·토요일 오후 같은 장소에 모인다. 2011년부터 7시즌 간 두산에서 뛴 니퍼트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결별했다. 두산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조쉬 린드블럼(30)을 영입했다. 니퍼트는 7년간 185경기에 나와 94승43패, 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했다. 니퍼트는 계약 무산 전 "나이가 있어 은퇴가 점점 다가온다. 그래도 한 시즌 더 뛰며 100승을 채우고 싶다"고 했다. 두산은 30대 후반에다 점점 떨어지는 기량, 비싼 몸값으로 고심하다 계약을 포기했다. 니퍼트의 지난 시즌 연봉은 210만 달러(약 22억원)였다.

시위를 주도한 두산 팬 이정현(42)씨는 "니퍼트 결별 소식이 나온 직후, 회원 2만2000여명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니퍼트와 재회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며 "특히 결별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은 니퍼트를 치유해 주고자 메시지 전달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의 집회에 500여 팬들이 찾아와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적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또 "장원준·양의지·오재원·김강률 등 두산 선수들도 훈련하러 잠실구장을 찾았다가 우리 모습을 보고는 '화이팅'을 외쳐줬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원하는 가장 최선은 니퍼트가 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씨는 "현실적으로 복귀가 어렵다면 니퍼트와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시간을 구단에서 마련해주길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팬들은 선수 등록 마감일인 오는 31일까지 집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같은 날 잠실구장 LG 트윈스 사무실 앞에는 LG 유니폼 차림의 팬들이 '양상문 단장 퇴진'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23일 LG 팬 표선기(43)씨의 1인 시위로 시작한 양 단장 퇴진 운동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표씨 혼자였지만, LG 팬들이 동참이 늘면서 지난달 9일엔  15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오는 6일에도 잠실구장 중앙현관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서울 잠실구장에서 '양상문 단장 퇴진 시위'를 벌이고 있는 LG팬들.

서울 잠실구장에서 '양상문 단장 퇴진 시위'를 벌이고 있는 LG팬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표씨는 쇼핑몰 운영을 친구에게 맡기고 매일 시위 중이다. 오전에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오후에는 잠실구장에서 한다. 그는 "양상문 단장은 LG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또 리빌딩을 외치며 베테랑들을 외면했다"며 "40여일간 구단 앞에서 시위하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주쳐도 인사조차 없어 허탈하다"고 말했다. 양상문 감독 재임 시절(2014~17) LG는 4-9-4-6위였다. LG 팬들은 무기한 시위를 계속할 작정이다.

'양상문 LG 트윈스 단장 퇴진' 집회에 나온 LG팬들. [사진 LG팬]

'양상문 LG 트윈스 단장 퇴진' 집회에 나온 LG팬들. [사진 LG팬]

LG와 두산은 라이벌이다. 하지만 잠실구장에서 시위를 하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두산 팬들이 LG 팬들을 찾아 격려했고, LG 팬들이 두산 팬들을 찾아 니퍼트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니퍼트 관련 집회를 하고 있는 두산 팬들과 양상문 단장 퇴진 시위를 하고 있는 LG 팬들이 함께 모여있다.

니퍼트 관련 집회를 하고 있는 두산 팬들과 양상문 단장 퇴진 시위를 하고 있는 LG 팬들이 함께 모여있다.

니퍼트 관련 운동을 벌이고 있는 두산 팬(오른쪽)과 양상문 퇴진 시위하는 LG팬.

니퍼트 관련 운동을 벌이고 있는 두산 팬(오른쪽)과 양상문 퇴진 시위하는 LG팬.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는 LG팬.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는 LG팬.

프로야구 36년 역사에서 구단을 질타하는 팬들의 시위는 종종 있었다. 관중 800만 시대가 되면서 팬들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팬들의 요구를 구단이 수용한 사례도 있다. 2014년 말 한화 이글스 팬들은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갔고, 결국 구단이 김 감독을 영입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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