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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분수대

황금 개띠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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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18년 무술년(戊戌年)은 황금 개띠해라고 한다. 10간(干)의 무(戊)는 노란색, 12지(支)의 술(戌)은 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개띠 하면 연상되는 게 58년 개띠다. 1958년 무술년에 태어나 올해로 환갑을 맞는 그들이 요즘 말하는 ‘황금’ 기운을 얼마나 제대로 누렸는지는 알 수 없다. 서정홍 시인은 ‘58년 개띠’라는 시에서 ‘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 잘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 ‘출세’ 하여/ 잘살고 있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푼 깎거나/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라고 노래했다.

실제로 전후 베이비붐의 절정에 태어난 이들은 고달픈 한국 현대사의 고비 고비를 힘겹게 넘어왔다. 콩나물시루 같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았고, 중학교 3학년 때는 고입 본고사가 폐지되는 입시제도 변화로 혼란을 겪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데도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고, 힘겹게 들어간 대학에선 긴급조치와 10·26을 지켜봐야 했다. 넥타이부대로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이들이었다. 60갑자를 한 바퀴 돌아 올해 환갑을 맞이한 이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올해 3만 달러 시대를 여는 한국 경제의 성공 스토리도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였다. 지구상에 있는 4000여 종의 포유류와 1만여 종의 새 가운데 인간이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은 개를 포함해 10여 종에 불과하다. 인류학자 팻 시프먼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침입종 인간』에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의 먹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늑대의 가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침입종인 현생인류가 ‘살아 있는 사냥 도구’인 개와의 협업에 성공한 덕분에 토착종인 네안데르탈인을 넘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개의 해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추구하는 요즘의 한국인에게 주는 상징성도 작지 않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12지의 열한 번째 동물인 개는 시간으로는 오후 7~9시, 방향으로는 서쪽과 북서쪽의 중간인 서북서(西北西)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 동물신(神)이라고 한다. 개의 신이 그 시각에 우리 모두 일터가 아닌 가정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서북서에서 불어오는 중국의 사드 심술을 막아주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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