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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재도약 위해선 지배구조·노사관계·세대갈등 3대 난관 풀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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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18면

현대차 50주년으로 본 한국식 압축성장의 부작용

지난 9월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제네시스 G70 공식 출시회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내년 초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 (CES) 2018’에 참석한다. [사진 현대차]

지난 9월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제네시스 G70 공식 출시회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내년 초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 (CES) 2018’에 참석한다. [사진 현대차]

현다이즘(Hyundaism), 현대자동차만의 유례없는 급성장을 언급할 때 해외 언론이나 학자들이 항상 언급하는 용어다. 강력한 오너십 아래 명확한 목표 설정,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 경영’, ‘하면 된다’ 정신. 1967년 창업한 현대차가 글로벌 ‘빅 5’ 메이커로 자리 잡은 성장 공식의 요체였다. 2010년 약 30년 간 각종 기술을 이전해 준 미국 포드를 제치고 글로벌 5위에 오르자 전 세계는 경악했다. 이밖에도 76년 최초의 독자모델 ‘포니’, 91년 국내 기술로 독자개발한 첫 자동차 엔진 ‘알파엔진’은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례였다.

독자 모델, 국산 엔진 개발 성공 #강력한 오너십으로 ‘빅5’ 올라 서 #뾰족한 순환출자 해소책 없고 #30대 이하-50대 이상 갈등 커져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거듭해 온 현대차가 지난 29일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렇지만 서울 양재동 사옥이나 울산 공장은 조용하다. 특별한 기념식도 없다. 창립기념일로 휴무만 했다. 지배구조·노사관계·세대갈등, 현대차그룹이 풀어야만 하는 3대 숙제를 놓고 아직 회사는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압축성장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관점에서 현대차의 위기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같은 측면을 띤다”며 “위기를 인식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솔루션, 새로운 성장 방식으로 현대자동차가 더욱 ‘현대화’돼야 할 때”라고 짚었다. 그는 현대차 임직원 50여 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올 4월 저서 『가보지 않은 길』을 펴냈다.

“지배구조 개편 데드라인 코앞인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당초 현대차그룹에 제시한 지배구조 개편 데드라인은 올 연말이다. 10대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차그룹만 순환출자가 오너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핵심 구조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이 지분 7%를 보유한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8%를 보유하고,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 33.9%, 기아차가 다시 모비스 지분 16.9%를 보유하는 환상형 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구 현대정공)→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마치 원처럼 이어져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재 현대차 지분 2.3%, 기아차 지분 1.7%를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해결 방안을 마련 중인 것은 맞지만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단순한 방법은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지분(16.9%)을 정 부회장이 블록딜 방식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4조원 가량의 현금이 필요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23.3%)과 현대엔지니어링 지분(11.7%)을 모두 팔더라도 4조원에는 못 미친다. 현대모비스가 가진 현대차 지분을 정 부회장이 매입할 경우 6조원 가량이 필요하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로선 그룹 주력 계열사 3곳을 분할·합병해 지주사를 출범시키는 방안이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안전하게 가져가기 위한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내다봤다. 롯데가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칠성·롯데푸드를 기업 분할한 다음 ‘롯데지주’를 세웠던 형식이다. 그렇지만 지주회사 전환에는 수조원의 자금, 수차례의 주주총회 등 다소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일단 시장에선 현대차가 정부 정책에 화답하는 차원으로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23.3%)을 20% 이하까지 매각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임금인상 폭 놓고 집행부-노조원 이견

노조 이슈는 현대차 경영진뿐 아니라 브랜드·영업 등 전 분야 임직원을 수년째 골치아프게 하고 있다. 노조의 파업으로 회사 이미지가 깎이고, 이로 인해 현대차의 판매량이 줄어드는 결과가 자연스레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현대차 임금 및 단체협상은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기게 됐다. 지난 22일 현대차 노조 조합원(약 5만1000명) 대상 조합원 총투표 결과, 반대 50.25%로 노사 잠정합의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임 노조 집행부에서 8번, 올 9월 하부영 신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선출 이후 11일 연속 파업을 벌였지만 임금인상 폭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 생산직 노조원은 “특근도 불참하고 파업을 했지만 결과는 촉탁직 축소, 하청 근로자 3500명 특별채용 등이 전부”라며 “지부장의 정치적 욕심으로 조합원의 이익이 희생됐다”고 말했다. 조합원 투표 부결은 ‘파업→성과금 인상→추가임금 확보’라는 공식으로 파업 동참을 요구했던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올해 잠정합의안에 따르면 기본급 인상분(5만8000원)은 2016년(7만2000원) 대비 1만4000원 적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국내에서 판매되는 만큼만 생산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느냐”며 “도요타를 비롯한 세계적 메이커는 모두 ‘지산지소(현지생산-현지소비)’를 기본으로 글로벌 생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자동차의 생산을 줄이는 대신 디자인·엔진·고성능 등 고부가가치 분야 비중을 늘리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7개 국에 생산거점이 있다. 연간 생산능력은 550만 대다. 이중 한국의 울산·아산·전주 공장은 176만 대(32%)를 차지한다. 현대차의 올해 내수시장 잠정 판매량(70만 대)을 감안해도 100만 대 이상을 해외에 팔아야만 현재 국내의 생산 시설을 유지할 수 있다.

기본급 비중 높이는 임금 개편도 필요

사실 노조의 문제는 또 다른 이슈마저 야기하고 있다. 1960년대 생, 50대 공장 근로자와 30대 이하 연구직·사무직 직원 간 세대갈등이 사내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주 조합원 투표가 부결되자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나왔다. 한 판매직 대리는 “50대 공장 근로자들은 지금까지 쌓아 놓은 돈이 있어서 더 버틸 수 있겠지만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며 “연말연시에 돈이 없어서 부모님 선물이나 여행을 가는 것도 미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에서도 젊은 조합원이 비교적 많은 남양연구소·판매 부문에선 찬성표가 6대 4 정도로 더 많았다.

사실 현대차는 1억원에 달하는 평균 연봉에 비해 기본급은 적게 지급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 3년차 직원의 경우, 기본급은 150만원(33%)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각종 수당, 두 달에 한 번씩 주는 정기상여금, 임단협 타결에 따른 변동 상여금 등을 모두 더해야 월 평균 450만원(세전 기준)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이남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수준 대비 기본급을 높이고 개개인의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이 상식적”이라면서도 “미국식이나 독일식의 연봉체계 도입이 필요하나 노조의 반발에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50대 공장 근로자 입장에선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푼이라도 더 챙겨 나가야 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 노조 집행부 선거에서 ‘국민연금 지급 시(65세)까지 정년 연장’ 공약을 내세운 하부영 현 지부장은 고령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울산 1공장에서 70% 가량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2015년 회사 측이 생산직 대상 호봉제를 불량률, 시간당 생산대수 등 각종 생산성 지표를 반영한 연봉제로 전환하려할 때도 노조원들은 강력히 저항했다. 노조 운동가들 역시 노령화되고 있다. 하부영 현 지부장은 1960년생이고, 박유기 전임 지부장 역시 65년생이다. 2009년부터 3년 연속 무파업을 이끌어 낸 중도·실리 성향의 이경훈 전임 지부장 역시 60년생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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