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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들이 세운 나라 라이베리아, 축구스타로 민주정권 교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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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가 진행된 26일(현지시간)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엘런 존슨 설리프 대통령의 12년 임기가 끝남에 따라 라이베리아는 73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AP=연합뉴스]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가 진행된 26일(현지시간)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엘런 존슨 설리프 대통령의 12년 임기가 끝남에 따라 라이베리아는 73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AP=연합뉴스]

서아프리카의 빈국 라이베리아가 73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목전에 두고 있다. 라이베리아 선거관리위원회는 26일(현지시간) 대선 결선 2차 투표가 순조롭게 치러졌으며 개표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 순조롭게 마무리 #1차 투표 선두는 축구 스타 출신 조지 웨아 #노벨평화상 설리프 대통령 12년 임기 매듭 #1944년 이후 73년 만에 평화 정권교체 목전

결선은 1990년대 세계적인 축구스타였던 조지 웨아(51)와 조셉 보아카이(72) 현 부통령의 맞대결로 치러졌다. 두 후보는 지난 10월 치러진 1차 투표에서 각각 38.4%, 28.8%의 표를 얻었지만 과반을 얻지 못해 결선무대에 올랐다. 국영 라디오 방송은 이날 몇몇 지역구에서 웨아 후보가 앞서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선관위 측은 공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양 후보는 성급한 (승리) 선언을 삼가달라”고 말했다.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에 오른 조지 웨아 후보(왼쪽)와 조셉 보아카이 현 부통령. 전직 축구 스타 출신인 웨아는 2005년에 이어 다시 대선에 출마, 엘런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후임을 노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에 오른 조지 웨아 후보(왼쪽)와 조셉 보아카이 현 부통령. 전직 축구 스타 출신인 웨아는 2005년에 이어 다시 대선에 출마, 엘런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후임을 노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관심을 끄는 것은 웨아의 당선 여부다.
수도 몬로비아 외곽 최빈민가 출신인 웨아는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 축구 특기생으로 학교를 다녔다. AS모나코(1988~92), AC밀란(1995~2000), 첼시(2000·임대), 맨체스터 시티(2000) 등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95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발롱도르(Ballon d'Or)를 수상했고 같은 해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도 받았다.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세 번(89, 94, 95)이나 탔다.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에 오른 조지 웨아의 축구 선수 시절 모습. [중앙포토]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에 오른 조지 웨아의 축구 선수 시절 모습. [중앙포토]

2003년 은퇴한 뒤 라이베리아 축구협회 홍보대사와 유엔아동보호기금(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이후 정치권에 투신해 2005년 처음으로 대선 후보로 나섰다.
당시 설리프 후보에게 패하면서 설리프가 아프리카 첫 여성대통령에 올랐다. 웨아는 2011년 대선 때도 민주변화회의(CDC)당의 윈스턴 툽먼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섰지만 설리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웨아는 수도 몬로비아가 포함된 몽세라도 주의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난해 4월 두 번째 대선 도전을 알렸다.

웨아 혹은 보아카이 후보 둘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라이베리아는 1944년 이래 처음으로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하게 된다. 인구 470만명의 라이베리아는 19세기 초 해방된 미국 흑인 노예들이 이주하면서 나라를 이루기 시작했다. 1847년 7월 26일 미국의 후원 아래 정식으로 독립해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이 됐다.

아프리카계-미국인 혈통의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과 기존 토착민이 일종의 계급 사회를 이뤘고 비교적 정치가 안정된 편이었다. 하지만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한 윌리엄 튜브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장기 독재와 쿠데타가 반복됐다. 특히 1990년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반군에 의해 사무엘 도에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내전이 확대돼 피의 살육전이 10여년간 지속됐다.

웨아는 이날 투표를 마치고 “좋은 과정이었다. 매우 평화로왔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순조롭게 선거 과정이 마무리된 데에 만족감을 표했다. 보아카이 후보도 “민주주의 시험이라는 점에서 위대한 날”이라고 소감을 남겼다.

2011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 설리프 (Ellen Johnson Sirleaf) 대통령. [중앙포토]

2011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 설리프 (Ellen Johnson Sirleaf) 대통령. [중앙포토]

내달 12년 임기를 마치는 엘런 존슨 설리프(79) 대통령은 아프리카에선 드물게 권좌를 평화적으로 물려주는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라이베리아 민주화 투사 시절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설리프는 201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라이베리아는 설리프 집권 후 경제 안정을 이뤄 2013년엔 8.7%의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2015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4000명이 넘게 사망하고 경제는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2016년 유엔 인간 개발 지수에 따르면 라이베리아는 188개국 가운데 177위로 거의 꼴찌에 가깝다. 뉴욕타임스는 “인구의 42%가 15세 이하이고 인구 절반이 굶주리는 나라에서 최우선 국정과제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지적했다.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에 오른 조지 웨아는 축구 선수 시절 AC밀란 소속으로 1996년 5월 한국을 방문해 친선 경기를 한 바 있다. 당시 기자 회견장에서 로베르토 바조, 웨아, 홍명보 선수(왼쪽부터). [중앙포토]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에 오른 조지 웨아는 축구 선수 시절 AC밀란 소속으로 1996년 5월 한국을 방문해 친선 경기를 한 바 있다. 당시 기자 회견장에서 로베르토 바조, 웨아, 홍명보 선수(왼쪽부터). [중앙포토]

◆한국에도 왔던 조지 웨아=웨아는 현역 축구 선수 시절 한국에서도 경기를 치른 바 있다. 당시 박종환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1996년 5월 24일 서울잠실종합경기장에서 웨아가 속한 이탈리아 클럽 AC밀란과 친선전을 벌였다. 전해 발롱도르 수상자인 웨아는 전반 4분 선취골을 터뜨렸고 경기는 한국의 3-2 승으로 마무리됐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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