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문재인 정권에 우려되는 3대 악성 종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5일 첫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3무(無) 원칙’을 선언했다. 더 이상 정해진 결론이 없고, 발언하는 데 군번(지위고하)도 없으며, 적자생존(무조건 받아쓰기)도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견을 제시하는 게 수석·보좌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에 다녀온 민주당 중진의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대통령의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더라. 국회의원 시절과 완전 딴판이더라”고 전했다. 현 정권의 절대 무기는 국정 지지율 70%다. 전적으로 문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진의원은 “누구도 함부로 문 대통령에게 쓴 말을 못할 분위기”라며 걱정했다.

최저임금·청년실업 후유증과 #반미 외교, 친문 자폐증이 걱정 #약속했던 탕평·협치·소통 대신 #적폐·댓글공격·셀프 홍보 판쳐 #청와대 회의 ‘3무 원칙’ 지키길

보수 정치의 궤멸 속에서 문재인 정권의 앞날은 탄탄해 보인다. 하지만 실패의 씨앗은 성공의 절정에서 뿌려진다.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문재인 정권 내부에도 언제 자신을 위협할지 모를 3대 악성종양이 슬금슬금 자라는 분위기다.

첫째 악성종양은 J노믹스의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소득주도 성장은 양날의 칼이다. 대기업들은 제품 가격 인상, 협력업체 쥐어짜기, 공장 해외 이전 등으로 인건비 부담을 분산시킬 수 있다. 문제는 자영업과 영세 중소기업들이다. 내년에 15조원의 인건비 추가 부담을 감당할 여력이 없자 대부분 신규채용을 중단할 움직임이다. 약자를 위한 정책이 또 다른 약자를 약탈하는 부메랑이 된 것이다. 청년실업도 마찬가지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1991~96년생이 성년이 되면서 2017~2021년까지 25~29세 인구는 추가로 39만 명 늘어난다(KDI 추산). 요즘 전체 실업자가 줄어도 청년실업률은 치솟는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다. 현 정권 임기 내내 ‘일자리 정부’ 구호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J노믹스의 역습에 숨어 웃는 쪽은 자유한국당이다. 여의도연구원은 “600만 자영업자와 청년들의 반란이 시작될 것”이라며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철호칼럼

이철호칼럼

둘째 종양은 반미·자주다. 문재인 정권의 자주파는 두 가지의 근거 없는 믿음을 신앙처럼 받든다. 하나는 북한이 결국 핵과 미사일을 협상 카드로 쓸 것이란 확신이다. 이는 “북한 핵개발은 자위용”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각과 맥이 닿아 있다. 또 하나는 주한미군은 결코 철수하지 않으리란 믿음이다. 노 전 대통령의 “반미 좀 하면 어때?”와 같은 맥락이다. 586 참모들과 자주파가 이 두 기둥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다 보니 외교안보 노선이 ‘북한 우선-반미’로 흐르는 게 당연하다. 자주파는 중국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목을 매고, 남북정상회담을 만능의 열쇠처럼 여긴다. 외교를 이념과 신념으로 밀어붙인 결과 북한엔 “정신 차리라”며 뺨 맞고, 중국엔 찬밥 신세다. 미국·일본에 ‘배신자’로 몰리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이런 굴욕외교에 우리 사회도 서서히 피로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셋째 종양은 친문 진영의 자폐증이다. 이미 참모들의 ‘문비어천가’에서 불길한 징조가 어른거린다. 청와대 대변인은 제천 참사 때 “대통령의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고 했다. 국가안보실장은 방중 때 “대통령께서는 혼밥을 한 것이 아니라 ‘13억의 중국 국민들과 함께 조찬’을 한 것”이라 우겼다. 서로 셀프 홍보를 하면서 “가슴 뭉클하다”며 자기들끼리 즐거워한다. 이미 친문 댓글도 ‘양념’ 수준을 넘어섰다. 양념이 지나치면 음식 맛을 버리게 된다. 한 기생충 박사는 “문빠는 미쳤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가 줄기차게 얻어맞았다. 여당 원내대표였던 우상호 의원도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에 안주하며 (댓글부대에) 욕먹을까 두려워 (국민의당과) 연대를 안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마저 “이견과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했다가 정치생명이 끊어질 뻔했다.

정치는 무균의 진공관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어느 정권이든 악성종양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렵다. 활발한 내부 토론과 견제로 최대한 악성종양을 관리하는 게 살길이다. 하지만 대선 때 요란했던 탕평·협치·소통은 증발되고 그 빈자리를 적폐·친문 댓글·셀프홍보 같은 진영논리가 차지했다.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최근 문재인 청와대에 정통하다는 한 진보 매체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실장과 수석, 비서관은 월급 받는 취직 자리가 아니다. 선거에 뿌릴 이력을 쌓는 자리도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요즘 청와대 참모들이 고언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청와대 회의의 3무(無) 원칙이 무너졌다면 악성종양이 쑥쑥 웃자라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처럼 다원화된 사회를 폐쇄적인 진영논리로 이끄는 것은 무리다.

이철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