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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노인 고혈압 환자 약에만 의존하면 낭패 … 운동·저염식 병행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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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홍그루 교수의 건강 비타민 

지난달 미국심장협회(AHA)·미국심장학회(ACC)는 고혈압 진단 기준을 140/90㎜Hg 이상에서 130/80㎜Hg 이상으로 내린다고 발표했다. 이 기준은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다. 대한고혈압학회가 정한 기준은 140/90㎜Hg 이상이다. 학회는 미국 기준을 국내 진료 지침에 반영할지 논의하고 있다.

70세 이상 남성 64%가 고혈압 #미국 고혈압 기준 낮췄다고 #강한 약 쓰면 어지럼증 유발 #생활습관 고쳐 천천히 낮춰야

미국의 진단 기준 변경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노인 고혈압 환자도 똑같은 조건으로 혈압을 관리해야 하느냐다. 고혈압의 위험 요인은 비만·고령·운동 부족·음주·흡연·당뇨병 등이다. 과한 염분 섭취도 요인이다. 이 중 나이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동맥은 탄력성이 있어 늘었다(이완) 줄었다(수축) 하면서 혈관 내 압력을 적당히 유지한다. 나이가 들수록 동맥은 탄력을 잃고 뻣뻣해진다. 혈액이 이동할 때 혈관에 부담을 줘 혈관 벽의 압력이 증가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6) 결과에 따르면 30세 이상 성인 29.1%가 고혈압을 앓고 있다. 60대는 남성 55.9%, 여성 46.2%, 70세 이상은 남성 64.2%, 여성 72.5%가 고혈압 환자다.

60대 고혈압 환자가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한 번 할 때 빠른 속도로 30분 정도 걷는 게 고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사진 세브란스병원]

60대 고혈압 환자가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한 번 할 때 빠른 속도로 30분 정도 걷는 게 고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사진 세브란스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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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고립성 수축기 고혈압’이 많다. 이완기 혈압은 그대로이거나 낮은데 수축기 혈압만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혈관이 노화해 딱딱해지면 이완이 잘 안 된다.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심장은 더 세게 피를 짜내다 보니 수축기 혈압이 상승한다. 반면에 이완할 때는 동맥에 혈액이 많이 없어 혈압이 정상이거나 감소한다. 수축기 고혈압은 심혈관·뇌혈관 질환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김모(68·서울 구로구)씨는 50대 중반에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그러나 최근 병원에서 혈압을 재 보니 177/72㎜Hg로 수축기 고혈압이었다. 김씨는 그동안 임의로 약을 먹었다 안 먹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김씨는 의사에게 “수축기만 고혈압인데 혈압약을 꼭 먹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또 “혈압약을 먹으면 수축기 혈압은 내려간다고 해도 이완기 혈압이 너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인은 수축기 고혈압이 문제

김씨의 의문처럼 노인 고혈압 환자 모두가 수축기 혈압을 140㎜Hg 이하로 낮춰야 할까. 노인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때 심혈관·뇌혈관 질환 발생률과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증명됐다. 2008년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발표된 ‘초고령층의 고혈압 연구(HYVET)’ 결과를 보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대 공동연구팀은 수축기 혈압이 160㎜Hg 이상인 80세 이상 노인 3845명을 대상으로 적극 치료군(1933명)과 대조군(1912명)으로 나눠 1년여 동안 추적 관찰했다. 적극 치료군은 효과가 강력한 고혈압약을 이용해 혈압을 목표 혈압(150/80㎜Hg) 아래로 떨어뜨렸고, 대조군은 위약(가짜약)이나 효과가 약한 혈압약을 이용해 혈압을 목표 혈압 수준으로 유지하게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극 치료군은 대조군보다 뇌졸중 사망률은 39%, 전체 사망률은 21% 낮았고 심근경색증 발생률은 28%, 심부전 발생률은 64% 낮았다.

지난해 성인 고혈압 유병률

지난해 성인 고혈압 유병률

대부분의 전문가는 고령층 환자에게 혈압, 특히 수축기 혈압을 낮추기 위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혈압을 얼마나, 어떻게 낮출지는 환자의 건강 상태와 동반 질환, 복용약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80세 이상 고령자는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고혈압 합병증뿐 아니라 다른 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적극적으로 혈압을 떨어뜨렸을 때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류모(75·서울 성북구)씨는 몇 년 전 감기몸살로 동네의원을 방문했다. 거기서 혈압을 측정한 결과 160/80㎜Hg으로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류씨는 키 1m68㎝, 체중 80㎏, 체질량지수(키의 제곱으로 몸무게를 나눈 값, 25 이상이면 비만) 28.3으로 비만이다. 전립샘 비대증·통풍·관절염이 있어 약을 먹는다. 의사는 혈압을 빨리 낮춰야 한다며 두 종류의 고혈압약(ACE 억제제·칼슘억제제)을 처방했다. 약을 먹은 후 혈압은 115/65㎜Hg로 떨어졌다. 그러나 평소에 없던 어지럼증이 생겼고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고혈압약을 한 개로 줄이는 대신 생활습관을 개선해 체중을 감량하라고 권했다. 류씨는 식사량을 줄이고 싱겁게 먹으면서 꾸준히 운동했다. 지금은 약을 줄여도 혈압이 정상(120/80㎜Hg 미만)을 유지하는 데다 어지럼증도 없어졌다.

복용약 많아 약 처방 정교해야

고혈압을 앓는 노인은 다른 연령대 환자보다 ▶짜게 먹었을 때 혈압이 많이 오르고 ▶혈압 변동이 심하며 ▶야간 고혈압이 흔하고 ▶백의(白衣) 고혈압이 많다. 혈압은 원래 활동량이 많은 낮에 상승하고 밤에 내려간다. 노인 중에는 혈관 상태가 나빠 야간에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야간 고혈압이라고 한다. 백의 고혈압은 진료실에서 의사·간호사가 혈압을 잴 때 긴장해 실제보다 혈압이 높게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약만으로 혈압을 급격하게 내리면 일어설 때 어지럼증을 느끼는 기립성 저혈압이나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다. 고혈압이 아니라도 노인은 앓고 있는 만성질환이 다양해 먹는 약이 많다. 약 부작용이 생기기 쉽고 한번 발생하면 오래간다.

대한고혈압학회는 고혈압의 치료 목표를 140/90㎜Hg로 삼되 80세 이상 환자는 140~150/90㎜Hg을 권고한다. 노인 고혈압 환자는 약에 의존하기보다 생활습관 개선을 함께 시도해 혈압을 천천히 낮추는 게 가장 좋다. 노인 환자는 짜지 않게 먹도록 노력해야 한다. 걷기 같은 운동을 하면 혈압이 낮아지는 데다 체중 감량에 좋아 도움이 된다. 노인에게 흔한 백의 고혈압 현상을 방지하려면 혈압을 좀 더 정확하게 잴 필요가 있다. 집에서 혈압계를 이용해 매일 아침·저녁 5분 간격으로 두 번 측정한다. 이런 방식으로 일주일 잰 뒤 첫날을 제외한 나머지를 평균하면 비교적 정확하다.

김치·찌개·국·젓갈 덜 먹고 … 무거운 것 드는 운동 피해야

한국인은 소금을 하루 평균 약 12g 먹는다. 세계보건기구(WHO) 권장량(5g)보다 많다. 노인은 염분 감수성이 높다. 혈액 속 염분 농도가 올라가면 세포에 있던 수분이 혈액으로 빠져나온다. 혈액량이 증가해 혈압 상승의 원인이 된다. 김치·찌개·국·젓갈·라면·마른안주 등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 있다. 자연 재료로 직접 조리한 음식을 먹는 걸 권한다. 유산소 운동은 혈압과 심폐 기능을 개선해 고혈압 환자에게 유익하다.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운동은 일시적으로 혈압을 높일 수 있어 피하는 게 좋다.

◆홍그루 교수

영남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교수, 대한심장학회 정책위원, 한국 심장초음파학회 보험이사

홍그루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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