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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히면 승진 보증…1만명과 같이찍은 김정은 사진정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노동신문 25일자 1면에 실린 세포위원장 대회 참가자들과 김정은 북한 노동위원장의 기념촬영 장면. [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 25일자 1면에 실린 세포위원장 대회 참가자들과 김정은 북한 노동위원장의 기념촬영 장면. [노동신문]

24일 평양시 중구역(구)에 위치한 평양체육관 앞 광장. 눈이 쌓여 있는 주변과 달리 광장은 비가 온 듯 젖어 있었다. 제설작업과 함께 염화칼슘으로 눈을 없앤 것으로 보인다. 최용해 당 부위원장을 비롯해 9명은 광장 한가운데 부동자세로 서 있고, 체육관 외부의 계단에는 외투(북한은 '솜옷'이라 부름)를 입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잠시 뒤 마이바흐 대형 리무진 승용차가 광장에 들어서자 인민군 군악대의 주악과 함께 차량 동선(動線)에 서 있던 군인이 거수경례했다. 계단에 서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만세’를 외치자, 번호판이 없는 차 안에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내렸다.

김정은, 24일 5차 세포위원장 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촬영 #북한은 김정은의 사진 촬영을 혁명활동으로, #촬영 참가자들은 승진 보증수표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사전 철저 검증

25일 북한이 공개한 세포위원장 대회 참가자들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기념촬영 장면. 주변 잔디밭 등에 눈이 쌓여 있는 것과 달리 광장은 제설작업과 함께 눈이 녹아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25일 북한이 공개한 세포위원장 대회 참가자들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기념촬영 장면. 주변 잔디밭 등에 눈이 쌓여 있는 것과 달리 광장은 제설작업과 함께 눈이 녹아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촬영장 도착을 기다리는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들. 최용해 부위원장은 다른 부위원장들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있어 그의 위상을 짐작케 했다. 오른쪽 부터 최용해, 박광호, 김평해, 태종수, 오수용, 안정수, 박태성, 최휘, 박태덕 부위원장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촬영장 도착을 기다리는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들. 최용해 부위원장은 다른 부위원장들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있어 그의 위상을 짐작케 했다. 오른쪽 부터 최용해, 박광호, 김평해, 태종수, 오수용, 안정수, 박태성, 최휘, 박태덕 부위원장 [조선중앙TV 캡처]

25일 오후 북한 조선중앙TV가 김정은이 제5차 세포위원장 대회(21~23일)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며 보도한 동영상의 장면들이다. 조선중앙TV는 이날 김정은의 기념사진 촬영 소식을 4분 2초 분량으로 편집해 별도 프로그램으로 내보냈다. 북한 언론들은 “당 부위원장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촬영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정보 당국은 이날 촬영장에 1만명 이상의 인원이 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국자는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하면 가끔 대규모 기념촬영을 하곤 하지만, 이날은 역대급 인원이 기념촬영에 모였다”고 말했다. 실제 공개된 사진엔 형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인원이 체육관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촬영장 광장에 인민군 군악대가 나와 연주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사진촬영장 광장에 인민군 군악대가 나와 연주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탑승한 차량이 촬영장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탑승한 차량이 촬영장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김정은의 사진 촬영을 이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이유는 뭘까.

전직 정보 당국자는 “북한은 김정은의 사진 촬영을 혁명활동이라고 여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사진 정치나 우상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최고지도자를 신성시 하는 북한에서 지도자와 사진을 찍었다는 그 자체로 충성심을 유도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북한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김정은은 24일을 포함해 올해 들어 10차례의 기념촬영을 했다. 이 중 네 차례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관계자들과의 촬영이다.

북한에선 김일성 주석(1994년 사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 김정은과 함께 찍은 사진은 신분을 보장하는 징표라고 한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에서 당원은 사회지도층으로 분류되는데 당원이 되기 위해선 기존 당원 1~2명의 보증인이 필요하고 후보당원을 거치는 등 심사가 까다롭다”며 “지도자와 찍은 사진은 확실한 가점(加點)이자 승진이나 진급의 보증수표”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조직지도부나 선전선동부에서 사전에 신분확인을 철저히 하고, 사진 촬영장에는 금속으로 된 볼펜도 반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한다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작은 부대의 경우 전원이 촬영에 동원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미리 검증된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제5차 세포위원장 대회 참가자들이 24일 평양 중구역 평양체육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제5차 세포위원장 대회 참가자들이 24일 평양 중구역 평양체육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이렇다 보니 촬영 사진은 개인들에겐 가보 수준으로 여겨진다. 다른 탈북자는 ”간혹 집안에 불이 나 진압한 뒤 들어가 보면 김일성이나 김정일 초상화, 또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품에 안고 죽은 경우가 더러 있다 “며 ”북한 당국은 이런 사례를 우상화의 선전 소재로 활용하고 있고, 해당 가족들을 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기념촬영후 촬영장을 떠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기념촬영후 촬영장을 떠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한편, 이날 기념촬영장에는 11명의 당 부위원장 중 이수용(외교담당), 김영철(대남담당)을 제외한 9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김정은이 촬영장에 도착할 때까지 광장에 도열해 있었는데, 다른 8명은 어깨가 닿을 정도로 무리 지어 있었던 반면 최용해 부위원장은 한걸음 떨어져 서 있다 김정은을 영접하는 모습을 보여 그의 위상이 다른 부위원장들보다 높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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