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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⑧엘리자베스, 가족의 힘으로 재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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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윙스파이커 엘리자베스 캠벨. [사진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 윙스파이커 엘리자베스 캠벨. [사진 한국배구연맹]

"Hit the ball(강하게 때려)!"

23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현대건설과 도로공사의 여자부 3라운드 경기. 관중석 한 켠에선 현대건설 외국인선수 엘리자베스 캠벨(24·미국)과 닮은 사람들이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랜디, 어머니 칼라, 한 살 터울 남동생 프레드였다. 엘리자베스는 삼남매 중 둘째로 언니는 한국에 오지 못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캠밸 가족은 경기 전날인 22일 밤 한국에 도착했다. 칼라는 지난 9월에 이어 두 번째, 아버지와 남동생은 한국에 처음 왔다. 랜디는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다. 2주 정도 머물다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틈틈이 엘리자베스와 함께 한국을 둘러볼 계획이다. 대학생인 프레드는 "오늘은 비빔밥과 김치를 먹었다"며 미소지었다. 칼라는 "통역 (최)윤지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 지난번에도 매우 편하게 지냈다. 구단 배려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12월 23일 수원체육관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가족. 어머니 칼라, 아버지 제프, 남동생 프레드. 프레드는 엘리자베스와 똑같은 1m89㎝지만 배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12월 23일 수원체육관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가족. 어머니 칼라, 아버지 제프, 남동생 프레드. 프레드는 엘리자베스와 똑같은 1m89㎝지만 배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고교와 대학 시절 아포짓, 미들블로커, 윙스파이커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다. 하지만 해외리그 경력은 거의 없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한 시즌을 치른 게 전부다. 어머니가 베네수엘라 출신인 엘리자베스로서는 사실상 한국 리그가 외국에서 치르는 첫 시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가족들의 표정은 밝았다. 칼라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는 한국 음식도 잘 먹고 팀원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는 평가다. 이도희 감독도 트라이아웃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엘리자베스를 선발하며 "공격과 리시브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점, 표정이 밝고 적극적인 성격을 봤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엘리자베스의 풀네임은 다니엘라 엘리자베스 캠벨(Dainela Elizabeth Campbell)이다. 그런데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은 엘리자베스를 '지'라고 부른다. 이유는 가족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랜디는 "고교와 대학 때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Z'자를 따서 응원했다. 좋은 플레이를 하면 두 손을 모아 'Z'자를 그렸다"고 했다. 이날은 아버지와 남동생이 V리그에서 활약을 처음으로 보는 날이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 중계는 해외에서 시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드는 "지인이 동영상을 코딩해 녹화된 경기를 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 랜디는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경기 속보만 본다. 1점 올라갔네, 1점 줬네, 이 정도다"라며 웃었다.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엘리자베스 가족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엘리자베스 가족

경기를 앞둔 엘리자베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연습 시간을 앞두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캠벨 가족에게는 아쉬운 결과로 끝났다. 현대건설이 도로공사에 세트 스코어 1-3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도 평소보다는 부진한 모습을 드러내 교체되기도 했다. 캠벨 가족의 얼굴 표정도 무거웠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은 "가족들 앞에서 너무 잘 하려고 할까봐 조금 걱정했는데 힘이 들어갔다"고 아쉬워하며 "그래도 가족들이 와서 힘이 될 것이다. 다음 경기에선 '달아나지 말고 자신있게 때리라'고 얘기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캠벨 가족은 아쉬워하면서도 "늘 이길 수는 없다. 다음엔 잘 하라고 위로해야 할 것 같다"며 엘리자베스를 만나지 않고 경기장을 떠났다. 네 사람은 다음 날 경복궁과 이태원 등 한국을 알 수 있는 곳을 둘러봤다.

외국인선수들에겐 가족의 방문이 큰 힘이 될 때가 많다. KGC인삼공사는 최근 고전하고 있는 알레나를 위해 남자친구 바로티(전 현대캐피탈)를 불러왔다. 도로공사 이바나도 남자친구가 방문한 동안 맹활약을 펼쳤고, 올해 안에 다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27일 김천에서 열리는 4라운드 첫 경기에서 다시 도로공사를 만난다. 엘리자베스가 가족의 힘을 받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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