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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지구가 ‘지옥철’이 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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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한 달 전쯤 일이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 뚝 끊겼다. 몇 정거장 앞에서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기다리던 역에는 15분 만에야 열차가 들어왔다. 어렵게 탔지만, 출근 시간에 쫓긴 사람들은 계속 밀고 들어왔고, 출입문은 서너 번씩 여닫혔다. 다음 열차를 이용하라는 안내방송도 거칠어졌다.

옴짝달싹하기 힘든 객차 안에서 다른 승객이 내뿜은 숨을 다시 마시면서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출발이 늦어질수록 지하철이 ‘지옥철’로 변하듯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미룰수록 우리가 사는 지구도 살기 어려운 곳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이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도 이런 걱정을 담고 있다. 2000~2014년 밀을 재배하는 103개국을 분석한 결과, 평균 기온 20도를 크게 벗어난 ‘날씨 충격’을 받은 지역에서는 유럽연합(EU)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례가 급증한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연간 35만 명인데, 지금처럼 온난화가 계속되면 2100년에는 난민 신청자가 100만 명이 될 것이란 추정이다.

에코사이언스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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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있다. 한국도, 전 세계도 온실가스 배출이 과거처럼 빠르게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무조정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11~2015년 국내총생산(GDP)은 11.8% 증가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1.2% 느는 데 그쳤다. 이런 추세는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제시했던 계획, 즉 2014년 무렵 정점을 찍고 이후 줄어들도록 한다는 감축 경로와 비슷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잘해 낸 셈이다.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비례하지 않는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자리 잡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일정을 10년 이상 미루는 느슨한 계획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2015년 채택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미국이 탈퇴를 선언했지만 세계 다른 나라는 변함없이 온실가스 감축을 다짐하고 있다.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한국도 무관심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감축 계획을 재수정할 방침이다. 여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 담아야 한다. 한국 탓에 지구가 ‘지옥철’이 됐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