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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에 바른 꿀, 아부다비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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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수경 화가

전수경 화가

아랍인의 초상화를 그려준 적이 있다. 검붉은 피부에 희끗희끗한 수염 그리고 높다란 터번을 가는 붓으로 숨죽여 묘사했다. 신드바드 모험의 아라비아 세계와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델의 피부결과 표정은 너무나 생소했다. 램프 속에서 거인이 나오고 양탄자가 날아다니는, 그러한 동화 속의 현자와 그는 달랐다. 신비롭게 바라봐 온 아라비아에 대한 나의 시각에 생경함이 더해졌다.

이슬람 제국의 9세기 지리학자인 이븐 쿠르다지바. 그는 “신라에는 금이 풍부하고 이슬람 교도들이 거기에 들어가면 그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정착하고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삼국시대부터 이미 아랍인들은 한반도와 교류가 잦았다. 고려 속요 ‘쌍화점(雙花店)’에도 고려 여인이 아라비아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아라비아는 중동 건설붐부터 최근 한국형 원전 수출까지, 우리에겐 고마운 성장의 발판이었다. 이태원 언덕의 이슬람사원을 보거나 테헤란로를 걸을 때 아랍은 충분히 한국 속에 들어와 익숙한 듯하다. 하지만 아랍은 여전히 수수께끼를 품은 채 우리를 당황케 한다. 그중 하나가 지난달 15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 구세주)’를 약 4971억원에 아부다비의 문화관광부가 매입한 일이다.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다.

다빈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 나무에 유채, 1505년경.

다빈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 나무에 유채, 1505년경.

자국의 미술이 아님에도 아부다비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아부다비는 이미 이 작품을 걸 ‘루브르 아부다비’를 지난달 자국의 사디야트섬에 개관했다. 아부다비 정부는 앞으로 30여 년간 루브르 미술관에서 명의 사용, 작품 대여를 포함한 각종 소프트웨어와 운영기법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약 1조2600억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 섬에는 자이드 국립박물관과 뉴욕대 아트갤러리가 함께 아부다비의 랜드마크를 만드는 중이다. 더 나아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한 세계의 유명한 미술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21조원이 넘는 예산을 의욕적으로 책정해 두었다.

이 결정을 단순히 산유국의 문화적 허세로 보기에는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오일 파워가 예전만 못하고, 인접한 카타르마저 2030년까지 획기적인 예술 부흥을 계획하고 고가의 현대미술 수집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국가 대부분은 석유에만 의존하던 국가 경제 정책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문화산업을 중요한 축으로 인식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과 가치가 있는 작품과 콘텐츠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들의 결정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앞둔 1866년 파리에 모인 미국 지도자들의 결의와 흡사하다. 당시 법률가 존 제이는 “미국인의 긍지를 위해 유럽의 미술관들에 필적할 국립미술관을 설립하자”고 주창했다. 이에 JP 모건, 리먼 브러더스 같은 자본가들이 엄청난 재산을 출연하는 것으로 맞장구쳤다. 이때부터 미국은 세계 유수의 미술품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4년 뒤 뉴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 미술관은 미국의 긍지이자 세계의 보배가 되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는 가난하게 살던 주인공이 도적들의 소굴에 들어가 보화를 가져오는 일로 시작한다. 변변한 재물이 없는 주인공이 그의 형을 찾아가 저울을 빌리려 하자 형은 저울에 꿀을 발라서 주었다. 그리고 저울을 돌려받았을 때 거기에 금화 한 닢이 붙어 왔다. 그것으로 형은 동생이 부자가 된 사실을 알아챈다. 여기서 꿀은 보이지 않는 사실을 감지하는 수단이다.

자칫 아부다비 정부가 미술품을 사들이고 문화적 외형을 부풀리는 일이 사치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부다비의 선택은 마치 저울에 바른 꿀이 그랬던 것처럼 변화를 요구하는 미래가 보내는 신호를 포착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가 올 1월에 말 많던 ‘구세주’는 아부다비가 마련한 새 공간에 걸릴 것이라고 한다.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