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니스 인사이트] EU 단일시장 25년 … 디지털 시장은 통합 안된 까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분절된 EU 디지털 시장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간에는 국경이 없다. 독일에서 네덜란드나 프랑스로 차나 기차를 타고 넘어갈 때 국경통제가 없어 어디가 국경선인가 알 수 없다. 국가의 상징과 같은 게 국경인데….

저작권법·전자상거래 규정 제각각 #유럽인 15%만 회원국 온라인쇼핑 #집행위, 디지털 단일시장 정책 제시 #브렉시트 등 불거져 별 진전 없어

이게 다 ‘1992년 계획’이 실행됐기 때문이다. 1992년 12월 31일까지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은 교역을 방해하는 모든 장벽 (물리적, 기술적, 재정적, 비관세장벽 등)을 제거하여 단일시장(내부시장)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후에도 EU 회원국은 꾸준히 노력해 25년이 지난 현재 영국을 포함한 28개 회원국은 기존 상거래에서는 대부분 단일시장을 이루었다. 상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본과 노동도 아무런 규제 없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우리가 흔히 EU라 하면 단일시장과 단일화폐를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 정작 사이버공간의 교역은 여기저기 불투명한 장벽으로 원활하지 않다. 2015년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5억1000만 명의 EU 시민 가운데 15% 정도만이 다른 회원국의 온라인 쇼핑을 이용했다. 하루에도 최소한 수십만 명이 국경을 넘어 관광하거나 일하러 가는 것과는 대조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8개 EU 회원국 인터넷 트래픽(인터넷 데이터 흐름)의 4%만이 다른 회원국으로 가고 54%가 미국으로 간다. 그만큼 유럽인들은 아마존이나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거대 정보기술(IT) 업체의 서비스를 애용한다. 이른바 GAFA라는 구글, 애플, 페북과 아마존을 유럽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 내 디지털 거래가 쉽지 않아 GAFA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EU의 디지털 시장 규모는 매우 크지만 서로 다른 계약법과 정보 보호법, 저작권법에 따라 통합된 단일시장이 아니라 조각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부 회원국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자국 안에서만 인터넷 거래를 하도록 하는 법 규정도 있다. 이런 분절된 시장을 통합하고 막힘없이 흐르게 하는 게 ‘디지털 단일시장’이다.

2014년 11월 취임한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이하 집행위) 위원장은 임기 5년 안에 달성해야 할 우선 정책으로 디지털 단일시장(Digital Single Market: DSM)을 제시했다.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는 의제를 제시하고 입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융커 위원장의 임기 2년을 채 남겨놓지 않은 현재 DSM의 진전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2015년 5월 초 그는 DSM을 이루기위한 16개 우선 조치를 발표했다. 크게 EU 28개 회원국 소비자와 기업이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하는 걸 개선하고, 디지털 네트워크와 서비스 인프라 창출 및 디지털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활용하는 게 골자다.

서비스 접근을 개선하려면 회원국마다 서로 다른 저작권법과 부가가치세를 조정해야 한다. 세원과 세율은 회원국의 고유 정책권한이기에 집행위가 건드릴 수 없다. 인터넷 업체가 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게 하는 규정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물론 이 규정은 모든 회원국에서 통용돼야 한다.

아울러 거대 검색업체와 SNS의 독점적 지위 남용도 막아야 한다. 현재까지 저작권법과 부가세 조정은 그다지 진전이 없고 구글과 페북 등 IT 기업이 경쟁을 저해하는 활동에 대해서만 거액의 벌금 부과와 시정조치가 있었다.

디지털 네트워크와 서비스 인프라 창출은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다. ‘네트워크 및 정보시스템보호 지침(The Directive on security of network and information systems: NIS Directive)’은 지난해 8월부터 발효됐다.

NIS의 핵심 운영업체를 지정해 이들의 책무를 대폭 강화했다. 전자상거래와 전자결제 및 클라우딩 업체 등의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고 사이버 공격을 당하면 즉시 감독 당국과 소비자에게 보고하고 시정하도록 의무 규정을 만들었다. 소비자의 보상권 규정도 더 강화했다. EU 회원국들은 2018년 5월까지 이 지침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데이터 전반 보호 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도 2016년 5월부터 시행되었다.

기존에 있던 데이터 보호법을 변화된 상황에 맞춰 20년 만에 대폭 수정했다. 특징은 기업의 국적을 불문하고 EU 안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EU 회원국 시민들의 정보를 보유한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정보 당사자의 정보 이용 동의권을 강화했고, 잊힐 권리를 명시했다. 정보 처리자는 정보 당사자에게 정보 이용 현황과 정보 침해 사실을 통보하고 정보침해 여부에 대한 정기적인 영향 평가 등을 실시할 의무를 지닌다. 이를 위반한 정보 처리자는 최대 전 세계 연 매출액의 4%나 2000만 유로라는 거액의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 규정은 회원국에서 별도의 입법 조치 없이 직접 적용되어 2년 경과 기간이 종료된 2018년 5월 25일부터 28개 회원국에서 시행된다.

집행위는 분절된 디지털 단일시장 때문에 해마다 40억~80억 유로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이를 제거하여 통합된 디지털 단일시장을 만들면 경제 성장률도 더 높아지고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집행위는 연간 500억 유로 어치의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고 추정했다.

유럽통합과정 과정에서 1970년대는 흔히 ‘암흑기’라 불린다. 당시 두 차례의 오일쇼크에다 경기침체에 물가가 오르는 사상 초유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된 EEC 회원국들은 비관세장벽을 쌓아 국내산업 보호에 앞장섰다. 국경통관 서류를 더 추가했고 상이한 기술표준도 더 만들어 EEC 회원국 간의 교역은 더 침체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한 것이 1986년 합의한 ‘1992년 계획’이다. 위기의 누적으로 당시 회원국들은 일국이 아니라 유럽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함을 깨달았고 집행위원회가 이런 기회의 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 계획을 성사시켰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제작·진행자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제작·진행자

이번 DSM도 집행위가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2015년 난민위기와 2016년 6월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 등 갑작스러운 위기 발발로 디지털 단일시장 완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