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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와 사투 벌이고 죄책감에 고개 숙인 소방관들

중앙일보

입력

29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소재 8층 건물 스포츠센터에서 22일 오후 화재진압을 마친 소방관들이 뒤늦은 식사를 하고있다 .김성태 기자.

29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소재 8층 건물 스포츠센터에서 22일 오후 화재진압을 마친 소방관들이 뒤늦은 식사를 하고있다 .김성태 기자.

21일 오후 제천 휘트니스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지는 등 도시 전체가 침울한 상황에 빠진 가운데 제천소방서 소방관들은 나흘 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성탄절인 25일 소방관들은 소방차, 구조차 등에서 잠시 다리를 펴고 앉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에서 상황실 운영, 화재 감식 지원, 현장 통제 등의 업무를 보고 있다. 초동 대응 부실 논란에 휩싸인데다 제천소방서가 압수수색 당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와 더욱 당혹해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제천경찰서에 대한 압수수색은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피트니스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피트니스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소방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뜩이나 조직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이런 소문들까지 나돌면서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며 말을 아꼈다.

또 다른 소방관은 화재 당시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이번 화재로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지인도 한 명 숨졌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충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소방서 직원 상당수가 제천 출신인데 사망자 가운데 1∼2명은 평소 알던 사람일 것"이라며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침통해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열악한 장비와 조건 속에서 거대한 화마와 사투를 벌였지만 생명을 더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론이 일어난 만큼 제천시 소방관들은 드러내지 못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있다. 한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 출동하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일한다. 이런 큰 사건을 겪고 나면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며 "이번 화재 진압 과정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따져야 하지만, 소방차나 굴절사다리차 등을 소방관 1명이 운전하고 출동할 정도로 열악한 소방시스템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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